서울 강남구 도곡동 '렉슬' 아파트는 3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다. 그러나 요즘 이곳에선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단지 전체를 통틀어 나오는 전세 매물은 고작 10여건. 그나마 나오는 즉시 계약으로 이어져 쌓여 있는 매물은 없다. 내년 2월 말에나 이사가 가능한 물건도 계약이 끝났다. 단지 인근 '황금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물건이 나오질 않는다"면서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109㎡(33평)형 전세금은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5억~5억1000만원이었지만 최근엔 최소 5억5000만원을 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권과 양천구 목동 등 일부 아파트 전세시장에 매물이 동났다. 수요는 꾸준히 느는데, 매물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전세금 상승세도 멈출 줄 모른다. 전세금이 뛰는 지역은 대부분 좋은 학교와 학원을 찾는 이른바 '학군 수요'가 몰리는 곳. 이들 지역에선 이달에만 4000만~5000만원씩 전세금이 뛴 아파트도 적지 않다.
강남구 대치동 쌍용1차 104㎡(31평)형은 지난 8월 3억5000만원에서 5000만원 뛰어 현재 4억원 이상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올 초 1억8000만원 하던 강남구 일원동 우성 106㎡(32평)형도 3억3000만원으로 두 배쯤 가격이 올랐다.
이에 따라 강남·서초·송파·양천구 등 일부 지역은 3.3㎡(1평)당 전세금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21일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작년 3분기 992만원으로 고점을 찍었던 강남구는 이달 18일 기준 1044만원까지 올랐다. 작년 4분기 793만원까지 하락했던 서초구도 954만원으로 1년 만에 20%나 뛰었다. 양천구도 766만원으로 전 고점(작년 4분기 693만원)을 넘어섰다.
가격이 뛰는 것도 문제지만 매물 자체가 시장에 나오지 않는 게 더 문제다. '부동산114' 이호연 과장은 "예년에 비해 전세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전세 공급량이 지나치게 적다"고 말했다. 물량이 적은 이유는 새 아파트가 적은 탓이다. 올해 강남 3개구 신규 입주물량은 3900여가구로 1만가구 이상 공급됐던 평년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또 대출 규제 확대로 매매가격 상승세가 주춤해지면서 매매 수요가 전세로 돌아서고, 기존 전세 계약자가 재계약으로 눌러앉는 것도 원인이다.
이 같은 강남권 전세 매물 기근현상은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내년 신규 입주물량도 올해와 비슷한 4100여가구 수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강남권 신규 입주 공급원이던 재건축아파트가 잠실·반포 등 5개 저밀도지구를 끝으로 거의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은 "2012년 말 이후 보금자리주택이 입주하기 전까지 강남권 입주물량 부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