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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된 이 강남 아파트가 재건축을 못하는 이유

뉴스 이석우 기자
입력 2009.07.16 03:23

한강변 구반포 주공 '소형평형 60% 의무제'로 재건축땐 평수 더 작아져
"작은 집으로 누가 가겠나" 주민들, 서울시와 갈등

서울 강북에서 동작대교를 건너다보면 왼쪽 한강변에 반포 주공1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단지 전체가 5층 안팎의 저층 단지이고 동(棟) 간 간격도 넓다. 아름드리나무도 제법 자라고 있어 쾌적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1970년대 초에 입주한 이 아파트는 지은 지 40년이 다 돼 가는 전형적인 노후 아파트. 아파트 주민 김모(67)씨는 "가끔 수도를 틀면 녹물이 나올 정도로 집이 낡았고, 난방이 잘 되지 않아 겨울철엔 가구당 난방비만 40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구반포 주공'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아파트는 반포·도곡·잠실 등 강남의 5개 저밀도 아파트 지구 중 유일하게 재건축이 되지 않았다. 강남권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들썩이고 있지만 이 아파트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주민들이 "재건축을 해 봐야 손해"라는 생각에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재건축해서 더 작은 집으로 갈 수 있나

반포 주공1단지(1·2지구)는 105~204.9㎡의 중대형으로만 구성돼 있다. 이 아파트는 재건축 때 소형평형의무비율제를 적용받는 것은 물론 가구 수 제한(기존 가구 수 대비 142%)도 받는다. 단지 내 A공인중개사 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규정에 따라 재건축을 하면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작은 집을 배정받아야 하는 집도 있는데 누가 (재건축에) 찬성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들썩이고 인근 반포 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래미안 퍼스티지'의 매매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곳에서도 재건축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아파트 주민자치회 오덕천 회장은 "최근 주민들 사이에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주민 의견 수렴절차를 거치고 있다"며 "정부에는 소형평형 의무비율제를 완화해 주거나 용적률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재건축 추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기존 집을 수리해서 살면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1970년대 초 입주한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전경. 한강변 쪽에 자리 잡고 있는 아파트는 중·대형이 많고‘소형 평형 의무제’적용을 받아 재건축사업 추진이 쉽지 않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소형평형의무비율제 두고 주민·정부 갈등

최근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면서 서울 강남·강북 가릴 것 없이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일부 아파트 단지는 '소형평형의무비율' 제도에 발이 묶여 있어 사업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소형평형의무비율제도란 재건축을 할 때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60% 이상 짓도록 한 규정이다. 서울시에선 소형 주택 중 60㎡ 이하 주택을 20%, 60~85㎡ 주택을 40% 이상 짓도록 하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소형 주택이 대부분인 개포·고덕동의 재건축 아파트는 용적률만 상향 조정되면 사업성이 크게 개선된다. 그러나 중대형 재건축 아파트는 용적률이 250~280%까지 높아지더라도 소형평형의무비율제 적용을 받아 사업성이 떨어진다. 압구정동 현대·한양아파트의 경우 가장 큰 주택이 264㎡(80평)를 넘고, 은마아파트 역시 중형(102·112㎡형)으로만 구성돼 있다. 이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기존 중대형 아파트를 재건축하면 60%나 소형 아파트를 짓도록 한 것은 너무 지나치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민을 위한 소형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제도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주거정비과 관계자는 "소형평형의무비율제도가 없으면 앞으로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는 소형 주택이 아예 사라질 것"이라며 "서민 주거 안정뿐 아니라 점차 증가하고 있는 1~2인 가구에 주택을 공급하려면 소형평형의무제는 필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제도 유지·수정 엇갈려

전문가들도 소형평형의무비율제도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재건축을 하면 무조건 '대박'이 나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소형평형 의무제에 반대하는 측면이 크다"며 "현재로선 이 제도가 있어도 재건축 사업 추진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소형평형 의무비율제도가 있는 한 강남 중대형 아파트 재건축 추진이 어려운 만큼 제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주택 시장에서 대형보다는 소형 주택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시장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형 주택을 짓게 될 것"이라며 "소형평형의무제를 완화해 시장의 논리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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