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Why] 한국 최고 땅값 명동빌딩의 '저주'?

뉴스 김성민 기자
입력 2009.07.11 03:08 수정 2009.07.11 19:10

억대 임대료 못 이겨 5년 주기로 매장 철수
"매출보다 홍보가 목적"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인 서울 명동의 커피전문점 파스쿠찌 건물이 브랜드숍 화장품점(네이처리퍼블릭)으로 바뀐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보증금 32억, 월세 1억3000만원에 3년간 계약을 했다. (조선닷컴 7월 1일 보도)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를 나오면 명동빌딩이 보인다. 주소지가 '충무로 1가 24-2번지'인 이 건물은 2004년 이후 한국 땅값 랭킹 1위다. 올해 서울시가 발표한 개별공시지가에 따르면 평당 2억559만원이다. 그런데 이 건물에 입주한 기업들은 5년을 주기로 철수하고 있다. 어찌 된 일일까.

명동빌딩은 1999년 주영규(63)씨가 지었다. 250평으로 5층 높이다. 건물이 지어진 지 1년 뒤인 2000년, 이곳에 유명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가 입주했다. 스타벅스는 건물주인 주씨와 '미니멈 개런티'계약을 맺었다. 매출의 20%를 월세로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저주라니요, 오히려 축복이죠.”전국 최고가 건물의‘저주’를 받는 입주업체들은 영업이익이 ‘0’이다. 이들은 “대신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는다”며 만족했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스타벅스는 중앙로 입구에 위치한 특성을 이용해 브랜드를 알렸다. 그러나 2004년 명동 상권이 중앙로로 변경돼 명동빌딩이 최고가로 등극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주씨는 스타벅스에 임대료를 2배 가까이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스타벅스는 5년 동안 명동빌딩에서 하루 평균 8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주 높은 매출액이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인상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2005년 5월 자리를 옮겼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지대(地代)를 이기지 못하고 나온 것"이라고 했다.

스타벅스가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커피전문점인 '파스쿠찌'가 들어왔다. 파스쿠찌는 2005년 보증금 30억, 월세 1억원에 계약을 했다. 3년 후에는 월세가 인상돼 1억1500만원이 됐다. 명동의 '랜드마크'에 입주한 파스쿠찌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내로라하는 커피 브랜드가 됐다.

파스쿠찌 관계자는 "커피브랜드의 후발업체로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며 "브랜드 홍보를 가장 큰 목적으로 비싼 땅에 입주했다"고 말했다. 파스쿠찌는 매달 2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지만 높은 임대료 때문에 큰 이익을 보지 못했다. 결국 파스쿠찌는 계약만료일인 2010년 4월을 채우지 못한 채 자리를 옮기게 됐다.

파스쿠찌 관계자는 "적자는 보지 않았으며 운영 전략 변화로 철수 결정을 내렸다"고 했지만 명동의 한 부동산 업자는 "파스쿠찌가 임대료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며 "실질적으로 높은 임대료 때문에 손해를 본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두 업체가 손해를 감수하고서 임대료가 비싼 곳에 입주한 이유는 뭘까. 김정호 성모부동산중개 실장은 "상징적인 위치에 입점하면 홍보 효과가 크고 소문도 빨리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스타벅스와 파스쿠찌는 명동의 입구인 중앙로에서 영업하며 널리 알려졌다. 높은 임대료를 본사에서 부담하고 직영으로 매장을 운영해 기업 브랜드를 키운 것이다.

홍보 효과를 위해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는 것은 명동 중앙로의 다른 매장들도 마찬가지다. 중앙로에 입점해 있는 20평 매장의 경우 보증금 10억~15억원, 월세 4500만~5500만원 정도로 개인 사업자가 진입하기에 큰 액수다. 명동의 한 부동산 업자는 "개인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임대료"라며 "중앙로에 있는 50~60여개의 매장 대부분이 본사 직영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높은 월세 탓에 직영으로 운영되는 매장들은 '본전치기' 영업을 한다. 크게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브랜드 홍보에 열중한다. 이동희(51)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중앙로 매장들은 이익이 크게 남지 않을 것"이라며 "홍보와 광고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매출만 따지면 아마 못 버틸 것"이라고 했다.

패션 란제리 업체인 에블린의 윤동석 상권개발팀장은 "명동은 플래그십 스토어(기업을 알리는 대표 매장)를 만드는 곳"이라며 "개인 점주보다 본사가 주도적으로 관리한다"고 했다.

높은 임대료와 낮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명동에서 홍보를 하려는 이유는 뭘까. 이준호 마케팅전략연구소 이사는 "명동은 기업의 규모를 상징하는 이정표로 이곳을 거치지 않은 브랜드는 없다"며 "강남과 달리 10대부터 60대까지 모든 연령층이 방문하고 외국인이 넘치는 시장은 명동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는 또 "명동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것은 둘째"라며 "'명동에 가면 무엇이 있다'라는 인식을 주려는 게 기업의 주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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