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이 중기(中企)대출 넘어서
서울 강남에서 수도권으로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아파트값 상승세는 정부가 내심 노린 '미니 버블(거품)' 성격을 띠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18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약 16조원)을 능가하는 것이고, 집값이 폭등했던 2006년의 담보대출 증가세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동안 정부는 시중에 돈이 찰랑찰랑 넘쳐 내수경기의 주요 축인 부동산 경기부터 살아나기를 고대해왔다. 따라서 최근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나타난 부동산 시장 과열 조짐은 실은 정부당국이 바라왔던 현상인 셈이다. 작년 가을 본격화한 세계경제 위기로 불황이 닥치자 정부는 11월부터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섰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를 제외한 전국의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을 모두 해제했다. 이로 인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집값에서 차지하는 대출액 비율) 규제가 완화되면서 고삐 풀린 듯 담보대출이 늘어났다. 여기에 작년 10월 연 5.25%였던 기준금리가 연 2%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급격히 불어난 시중 부동(浮動) 자금이 고수익을 좇아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가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정부는 의도했던 대로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게 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부동산 과열은 양날의 칼이다. 얼어붙은 경기에 불을 때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부동산 버블을 더 키워 경제 전반을 위험에 빠트리는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정부는 아직은 전자(前者)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지난달부터 부동산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지만 정부 당국의 대응은 과거에 비해 강하지 않은 느낌이다. 담보대출 규제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진동수 위원장은 3일 "주택담보대출 동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시장 불안이 우려되면 대출기준 강화 등 선제적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사전 녹화된 KTV 정책대담 프로그램에서 "강남 3구 등 수도권과 아직 미분양 물량이 많은 지방에 획일적인 부동산 대책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동산 가격 움직임이 있는 지역에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또 "지금은 LTV(주택담보인정비율) 등을 수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부동산 규제를 해야 한다면 주택담보대출 총량 규제를 해야 한다"고 구두(口頭) 경고를 했다. 윤 장관은 앞서 지난달 25일에도 "필요할 경우 주택담보대출 총량규제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장관들의 이런 발언은 당장은 고강도 처방을 쓸 생각은 없고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통상 과열이 우려되는 시점에서 금융당국자가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수준의 강도로 대응하면 시장에선 이를 당분간 집값 오름세를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하기 마련이고, 이것이 오히려 가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 앞으로 정부는 부동산 과열을 어느 정도 묵인하되 과열 현상이 버블 세븐을 포함한 수도권 전역으로 심각하게 확대될 경우 고강도 처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의 고강도 처방을 조기에 불러올 수 있는 변수가 하나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이 저소득층을 끌어안기 위해 펼치고 있는 '친(親)서민 전략'이다. 강남 등 이른바 '부자 동네' 집값이 치솟아 서민층이 사는 동네의 집값과 격차가 더 벌어져 서민층의 반발을 살 경우 여권의 '친서민 전략'은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 과열이 '친서민 전략'을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정부는 곧바로 과열 진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앞으로 부동산 시장 흐름과 정부 대응을 보는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