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코레일·토공 등 땅값 올리려 경쟁입찰
분양가 치솟고 사업 차질
외국선 민관합동 개발로 수익성·공익성 동시만족
일본 후쿠오카 시청 앞에 있는 아크로스 빌딩. 14층 건물을 계단식으로 쌓아 건물 외벽에 정원을 조성, 건물이 마치 작은 산처럼 보인다. 외벽 녹화 덕분에 냉난방비 절감까지 가능, 세계적인 환경친화 건물로 소문나면서 관광코스가 됐다. 이 건물은 심포니홀·국제회의장 등 공익시설이 상당수 배치돼 있어 음악회 등 문화행사가 연중 열린다. 수익성만을 고려했다면 이런 건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성이 강한 건물을 만들기 위해 부지를 제공하고 미쓰이부동산 등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민관합동개발 방식을 채택했다. 민간업체들은 전체 40%에 해당하는 상업시설과 임대사무실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이다.
공공임대주택(160가구)과 민간임대주택(390가구)으로 이뤄진 도쿄 미나미 아오야마 단지. 이 단지에는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도서관·보육원·노인복지시설·대학원 등 다양한 공공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토지를 민간업체에 70년간 장기 임대해주고, 민간업체는 민간임대주택과 상업시설을 운영, 건축 투자비를 회수하는 구조여서 수익성과 관계 없는 다양한 공공시설 건설이 가능했다.
외국에서는 이처럼 공공기관이 땅을 제공하고 민간이 건축비를 투자, 건물의 공익성을 높이는 개발이 유행이다. 민관합동 개발방식의 장점은 '땅장사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는 점. 땅 주인이 땅값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할 경우, 개발회사는 땅값을 뽑기 위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고 높은 분양가 때문에 분양이 되지 않아 결국 부도를 낸다는 것. 설령 부도를 내지 않더라도 수익성 위주의 조잡한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다.
◆땅장사의 저주에 빠진 개발사업
외국과 달리 한국은 서울시, 코레일(옛 철도청), 토지공사 등이 경쟁 입찰을 통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각, 개발회사가 부도를 내거나 사업이 중단되는 등 땅장사의 저주에 빠져 있다. 서울시가 2005년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했던 뚝섬 4구역을 4440억원에 구입했던 부동산 개발회사는 결국 계약금을 제외한 잔금을 내지 못해 사실상 부도를 냈다.
최근 서울시가 다시 경쟁입찰에 부쳤지만 최저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 기업들이 입찰 참가를 포기했다. 인근 뚝섬 1구역과 3구역을 사들인 개발회사들도 높은 땅값 때문에 초고가로 아파트를 분양했지만, 경기침체로 분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레일이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한 용산역세권 개발사업도 중단위기에 있다. 경쟁입찰로 토지가격이 8조원으로 치솟은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개발회사가 중도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벤처정보대학원 최민섭 교수는 "민간뿐만 아니라 서울시·토지공사 등 공공기관까지 땅을 경쟁입찰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바람에 개발사업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설령 완공된다고 해도 수익성 위주로 개발돼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주공동개발 활성화해야
반면 서울시가 토지를 장기 임대방식으로 제공한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와 토지가격을 비교적 저렴하게 책정한 상암동 랜드마크 빌딩은 비교적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땅을 매각하지 않고 장기 임대 등의 방식을 택할 경우, 경기부양효과를 높이면서도 도시에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사업 중단 위기에 처한 용산역세권 개발의 경우, 민관합동 개발방식이었다면 사업속도가 빨라져 건축비 조기 집행이 가능, 경기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다양한 공공시설의 건설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민간개발도 외국처럼 지주와 개발회사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형태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롯폰기 개발 등 외국의 대규모 개발의 경우, 상당수가 지주와 건설사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형태"라며 "지주들은 건물이 완공된 후 임대를 통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챙길 수 있고, 건설사들은 땅값 부담에서 벗어나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