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동탄에 7조8000억 풀린 날 "그 돈 어디로" 관심집중

뉴스 동탄신도시=이석우 기자
입력 2009.04.01 03:07 수정 2009.04.01 09:53

동탄 2지구 토지보상 시작 땅주인 900여명…최고 140억
증권사·은행 등 '고객 잡이' "통장에 넣지… 자식은 안줘"

31일 오전 8시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 중심지에 있는 광장타워. 한국토지공사 동탄2사업단이 입주해 있는 이 빌딩 입구에는 두툼한 서류 봉투를 움켜쥔 300여명이 200m가량 줄을 서 있었다. 빌딩입구와 도로 주변에는 대우증권, 신한은행 등 증권사와 은행 이름을 적은 어깨띠를 두른 직원 100여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검은색 줄무늬 점퍼에 면바지 차림을 한 70대 노인 2명이 택시에서 내리자 흰색 투피스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20대 증권사 여성 직원 4명이 앞다퉈 뜀박질을 했다.

"할아버지~ 채권 받으시면 꼭 연락주세요. 세무상담, 투자상담도 공짜로 해 드려요."

"나는 보상금 얼마 안 된다. 일없다."

노인들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다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여성 직원들이 건네준 명함과 전단을 받아 들고 빌딩으로 들어섰다. 이날 보상을 받기 위해 토공 화성지사를 찾은 지주(地主)들은 모두 900여명. 증권사·은행 직원들은 새벽 6시부터 해질 무렵까지 온종일 빌딩 주변을 뛰어다녔다.

동탄2기 신도시에 수용된 토지에 대한 보상이 시작된 31일 오전 10시쯤 보상을 받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한국토지공사 동탄2사업단 사무실을 찾은 땅 주인들이 계약서를 쓰고 있다.

◆보상금 7조 8000억원 동탄2지구에 풀려

수도권 외곽 신도시로 개발되는 동탄2 지구에 대한 주민 토지보상이 시작됐다. 동탄2지구에 수용되는 토지는 2397만2000㎡(725만평) 규모로 토지보상금만 5조5000억원, 건물 공장 등에 대한 보상금까지 포함하면 총 7조8000억원의 보상금이 풀린다. 올해 시중에 풀리는 토지보상금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법인을 제외하고 보상금이 100억원이 넘는 주민이 2명, 50억원 이상이 5명이다. 가장 많은 보상금을 받는 사람은 140억원을 받아 간다.

토지보상이 시작되기 전날 저녁부터 토공 동탄지사 사무실 주변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수원에서 왔다는 김모(여·49)씨는 "새벽 5시쯤에 왔는데도 대기표 76번을 받았다"고 했다. 일부 지주들은 전날 동탄신도시의 여관에서 잠을 자고 새벽 3~4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 토공은 토지보상금을 지난해 12월 지급할 예정이었지만 자금 부족으로 보상이 3개월 연기됐다. 게다가 4월 중에는 5500억원만 지급될 예정이어서 지주들의 마음이 조급해진 것이다.

증권사와 은행 직원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찾아온 지주들의 보상금을 유치하기 위해 전단과 명함을 나눠주는 등 치열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식들에게는 절대 안 준다"

침체에 빠져 있는 부동산 시장과 증시는 8조원에 가까운 엄청난 보상금이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 오길 기대하고 있지만 지주들의 생각은 달랐다.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는 섣불리 투자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농사짓던 땅이 수용돼 8억원을 보상받는다는 고모(76)씨. 고씨는 3년 전 큰아들에게 물려준 땅 보상금 11억원까지 총 19억원을 받는다. 고씨는 "서울 사는 딸이 '나는 아무것도 없느냐'고 따지기는 하지만 늙어서 돈 없으면 서러운 것 아니냐"며 "마누라와 살 작은 아파트나 한 채 사놓고 남는 돈은 통장에 넣어 두고 소주나 사 먹을 생각"이라고 했다.

노인들은 자식들을 '경계 대상1호'로 꼽았다. 보상금 2억5000만원을 받는다는 신모(69)씨는 은행에 근무하는 아들이 '주식으로 돈을 불려 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는 "농사지어서 자식 셋 모두 대학 공부시켰으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며 "아이들 모아 놓고 '너희가 이 돈 탐내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고 했다. 신씨는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는 통장에 돈을 넣어 둘 계획이다.

5년 전 동탄에 땅을 사 두었다가 보상금 2억3000만원을 받게 됐다는 회사원 박모(37)씨 부부는 "주가는 이미 너무 올랐고, 부동산은 아직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안전한 채권에나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동자금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 커

지난 1월부터 시중의 웬만한 은행과 증권사들은 모두 세무사, 법무사, 투자상담사 등 5~6명을 한 팀으로 만들어 토지 수용 지역을 돌아다니며 투자 유치에 나섰다. 하지만 한결같이 "불황이라서 그런지 주민들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부동산 업계에서도 지주들이 토공에서 동탄2지구 내에 보상금 대신 지급하는 대토(代土)를 받거나 살 집을 마련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서울과 수도권 택지지구에는 토지보상금이 총 20조원 풀릴 예정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3조5000억원), 송파구 문정지구(1조원), 평택 고덕국제화지구(3조1000억원) 등이 대표적인 토지보상지역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3~5년 전 행정중심복합도시나 혁신도시 등에 대규모 토지보상금을 받은 지주들이 대거 서울 강남으로 몰려 집값을 올려놓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SC제일은행 강남PB센터의 김진혁 차장은 "현재까지는 각 지역 지주들이 재테크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보상금을 묻어 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토지 보상금을 받는 사람들은 다시 토지나 아파트 등에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 같은 불황기에는 예외"라며 "하지만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 증시나 부동산 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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