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주택시장 기(奇)현상, 10년전 판박이

뉴스 탁상훈 기자
입력 2008.12.29 03:18

①"전세금 돌려달라" 세입자가 주인집 경매신청
②집값 수시로 왔다갔다… 계약서 썼다 지웠다 반복
③분양 현장에 해외교포 "환율 덕에 투자매력 굿"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임모씨는 지난 10월 이 주택을 법원에 경매로 내놨다. 전세 계약기간이 끝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이 전세보증금(1억2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달 뒤, 한 차례 유찰됐던 경매가 다시 낙찰돼 임씨는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세계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의 여파로 주택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연말 주택 시장에 그동안 예상치 못했던 기현상(奇現象)들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자신이 살던 전셋집을 경매로 내놓거나 ▲주택 매매 계약의 조건이 계속 바뀌고 ▲해외 교포들의 국내 주택 매입이 늘어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들이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국내외 경기 급변과 집값 하락 등으로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에 보여졌던 모습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이례적 현상들이 더욱 다양하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경매는 전세입자가 신청

전세 시장에선 기존 전세입자들이 살던 집을 경매에 내놓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세입자들이 자신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란이 해결되지 않자 분쟁 끝에 경매에 넘기고 있는 것이다.

경매전문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전세입자가 신청한 경매 건수는 8월만 해도 207건에 불과했으나 이달에는 381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내년 1월 판교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 이런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전세 매물도 소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규모 새 아파트 입주까지 시작되면 전세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그동안 경매는 담보대출을 내준 금융기관이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통념이 깨지고 있다"며 "더욱이 최근에 보증금 반환을 이유로 진행되는 경매는 여름쯤에 신청된 것들이어서, 지난 가을 이후 역전세난이 심화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경매물건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시로 바뀌는 계약 조건

최근 재건축 단지 등에선 집값 급락과 일시 반등의 여파로, 매도 혹은 매수자가 계약 조건을 바꿔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실제 서울 강남의 B중개업소에선 요즘 매도자와 매수자가 번갈아 가며 조건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통에 애를 먹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달 재건축 추진 중인 강남의 C아파트를 7억5000만원에 매매하기로 하고 계약금(7500만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달 초 이 아파트 값이 6억5000만원까지 떨어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집을 사려던 사람이 "계약금(7500만원)을 포기하고서라도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주장했기 때문. 결국 집 주인이 매매가격을 7억2000만원으로 깎아줬지만, 이달 말 잔금 날짜를 앞두고 다시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정부의 추가 규제 완화 방침이 전해지면서 집값이 다시 7억5000만원으로 오르자, 이번에는 매도인이 "애초 맺었던 계약대로 7억5000만원에 팔겠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거래를 맡고 있는 N부동산 관계자는 "예전엔 이런 일이 드물었는데 이젠 나도 지친다"며 "양쪽의 신경전이 팽팽해 거래가 성사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주 전, 6억5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진 서울 강남지역 D아파트 역시 비슷한 상황. 이 아파트 값이 최근 7억원대로 오르자 매도인은 거래를 해지하려는 생각에 중도금을 입금하려는 매수자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 강동구의 실로암공인 양원규 사장은 "요즘처럼 시장이 불확실할 때에는 계약금을 많이 걸거나, 중도금 날짜를 앞당기는 방식으로 계약 파기를 방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아파트를 해외에서 매입

주택 거래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 속에서도 최근 해외 교포들이 서울의 아파트를 사들이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파트값이 고점 대비 40~50% 떨어진 곳이 적지 않은 데다, 원·달러 환율마저 여전히 높아 달러나 엔화를 가진 사람들의 국내 부동산 투자 매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강모(52)씨는 지난주 서울 송파구의 E아파트 112㎡(34평)형을 전세를 끼고 매입했다. 그는 "집값·환율 모두 고려하면 4~5년 뒤에는 충분히 수익성이 있어 보여 고국에서 집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서울 남산 인근에서 분양 중인 주상복합 아파트 등 국내 신규 분양 현장에도 해외 교포들의 문의가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영향 등으로, 올 들어 6억3000만달러에 그쳤던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송금액은 12월 12억8000만달러에 이를 만큼 급증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주로 해외 부동산을 국내에 소개하던 해외부동산 중개업체들도 요즘 반대로 해외 교포들에게 국내 아파트를 파는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루티즈코리아 임채광 팀장은 "환율이 다소 안정되고 있지만, 미국 금리가 제로 수준이기 때문에 여윳돈을 가진 교포들이 국내 투자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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