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에 내놔도 사는 사람 없고… 아파트 짓자니 미분양 걱정
미분양 갈수록 늘어 건설사들 유동성 위기
2~3년 지속땐 주택공급 부족 우려
시행사 A업체는 미분양으로 겪고 있는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 경남 지역에 보유하고 있는 약 8만㎡ 크기의 주택사업용지를 팔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토지 매입을 제안했던 건설사들로부터 번번이 퇴짜 맞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땅을 사고 대출 이자를 갚는 데만 무려 2000억원을 썼어요. 이를 10% 할인한 가격(1800억원)에 내놓았는데도 몇 달째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A시행사 대표)
주택경기 침체와 이에 따른 건설사들의 자금 압박으로, 아파트나 주상복합을 지으려던 민간택지들이 건설시장에 급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게다가 대형 건설사들도 14만 가구(지난 6월 말 기준)를 넘어선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부담으로 자체 개발사업을 잇달아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민간택지는 건설업계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할인 가격에도 외면당하는 민간택지
B시행사는 2006년 초, 경기도 화성에 60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 땅 7만㎡를 600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아직 착공은커녕 아파트를 지어줄 건설사도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미분양이 가파르게 쌓여가는 상황에서 지금 주택사업을 벌이는 것은 짚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거절했기 때문이다.
시공업체인 건설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택경기가 깊은 침체에 빠져 있는 만큼 비용 부담과 투자 위험이 큰 자체사업은 사실상 중단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형건설사들은 올해 재개발·재건축 또는 리모델링 사업을 일부 수주했지만 신규 주택개발 사업은 전혀 추진하지 않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주택영업팀 차장은 "1년 전만 해도 한 달에 15~20건의 신규사업 제안이 들어오면 한 건 정도는 계약으로 이어졌지만 올해는 한 건도 없다"며 "모든 건설사들이 자급 압박에 허덕이는데 누가 리스크까지 감당하며 사업을 추진하겠느냐"고 말했다.
◆집값 하락·자금난에 신규사업 중단
건설업체들이 신규 주택사업 진출을 사실상 중단한 이유는 주택경기 침체와 건설사의 자금 압박으로 집약된다. 갈수록 심화되는 부동산 경기 하락에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면서 건설사들도 대출금 상환 등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아파트 실거래가 조사에 따르면 서울 반포동 AID차관아파트(전용면적 73㎡)는 한 달 전보다 1000만원 낮아진 9억3500만원에 거래됐다. 개포동 주공1단지(45㎡) 매매가격도 7억5000만원으로 3개월 전보다 3500만원 떨어졌다.
H건설 마케팅담당 임원은 "올 들어 대부분의 중견 건설사들이 매달 갚아야 할 금융 이자만 400억~500억원"이라며 "이를 마련하는 것만해도 정신이 없는데 신규 사업을 벌일 여력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향후 주택공급 위축으로 이어져
문제는 민간 건설사들이 주택건설을 기피하면서 올 들어 주택건설 물량이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전국에서 사업승인 또는 건축허가를 받은 민간주택은 총 13만395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7% 감소했다. 게다가 부동산 경기 침체는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 금리 인상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2~3년간 주택 공급이 더욱 위축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민간주택은 주택 경기가 좋으면 너무 많이 짓고 나쁘면 급격히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신규사업 위축이 앞으로 2~3년 더 지속된다면 향후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