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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매수자가 양도세 내주고 '미등기 거래'

뉴스 탁상훈 기자
입력 2008.08.17 22:13 수정 2008.08.18 03:00

불법 매매 판치는 서울 '은평 뉴타운' 아파트
실거래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서 작성
5~7년 거래 금지된 일반 분양분도 매물로
전문 브로커들 끼는 경우 많아 '위험 천만'

"아 뭘 모르시네. 그건 여기선 당연한 거예요. 그 조건에라도 사겠다는 사람 많아요." 서울 은평구 '은평 뉴타운' 한가운데에 위치한 A 공인 중개업소 박 모 사장은 집을 사겠다고 찾아온 손님에게 계속 이상한 조건을 강요했다. 박 사장이 손님에게 요구한 것은 아파트를 팔려고 하는 사람(매도자)이 내야 할 세금을 집을 살 사람(매수자)이 부담하라는 것. 박 사장은 "은평뉴타운 매물은 대부분 집주인이 아직 등기를 안 한 상태라 지금 사고파는 게 불법이긴 하다"면서도 "그러나 이 지역 인기가 워낙 높기 때문에, 매수자가 매도자의 취·등록세와 등기 후 매도에 따른 양도세까지 내 주는 방식으로 거래가 성사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뉴타운 프로젝트' 가운데 대표주자 격인 은평 뉴타운에서 불법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이런 불법 거래에 응했을 경우 예상 못한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버젓이 불법 거래 일어나

지난주 찾아간 7곳의 은평뉴타운 중개업소 가운데 6곳이 이런 식의 거래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얘기를 꺼내지 않다가도 막상 구체적으로 대화가 진전되면 매도자 세금 부담과 다운계약서 작성 조건을 내걸었다. 두 번째 찾아간 B부동산 관계자는 한 술 더 떠 "구입 가격을 좀 깎고 싶으면 다운 계약서(실제 거래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쓰는 관청신고용 매매 계약서)를 쓰라"고 했다. 어차피 매도자의 양도세를 매수자가 부담해야 하는 거래인 만큼 다운계약서를 통해 양도세를 줄이면 매수자의 부담도 그만큼 적어질 것이란 논리였다. 집주인이 등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 팔거나, 다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사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C 부동산 상담실장이라는 사람은 "층·향이 좋은 112㎡(34평) 물건이 6억원에 나와 있는데 꼭 잡아라. 얼마 전에 6억2000만원짜리도 계약됐다"며 "대신 계약서는 5억 4000만원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5~7년간 매매 거래가 금지된 일반인 분양분을 매물로 내놓는 곳도 있었다. 단지 안쪽 D부동산 김모 사장은 "일단 매매 대금을 넘겨주고 들어가 살되, 매매 금지 기간인 5~7년 동안 그 집에서 마치 전세 사는 것처럼 전세 계약서를 써 놓으면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형성된 은평뉴타운 112㎡(34평) 아파트 시세는 5억2000만~6억원.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거래 과정에서 거품이 생기다 보니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다"고 말했다.

◆안전장치 없는 위험한 거래

문제는 이런 불법 거래의 책임이나 피해를 매수자가 고스란히 떠 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스피드뱅크 이미영 팀장은 "불법 거래 물량의 경우 대개 같은 물건을 여러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전문 브로커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며 "매수자가 돈을 건네주더라도 제대로 명의 이전을 못 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5~7년간 매매 금지된 일반 분양분 역시 가계약서를 써두더라도, 나중에 집값이 뛰면 매도·매수자 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런 거래가 불법인 만큼 적발 시 처벌도 무겁다. 현행법에 따르면 다운 계약서를 썼다 적발되면 매수, 매도자 모두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중개업소 중엔, 초기 6개월 정도만 영업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곳도 상당해,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이들에게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업주체인 서울시 SH공사와 관할구청인 은평구청은 "현실적으로 일일이 불법 거래를 단속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입주를 앞둔 다른 뉴타운에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단지 외관 못지않게 뉴타운이 안착할 수 있는 체계적 운영과 관리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평뉴타운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등 총 349만㎡ 규모 부지에서 조성 중인 뉴타운. 2002년 첫 사업을 시작, 오는 2011년까지 총 1만6200가구를 지을 예정이다. 크게 세 개 지구로 나눠 공사 중인데 이 가운데 1지구가 최근 완공돼 입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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