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히 꺼지는 부동산 버블
대도시 아파트값 50%까지 폭락… 거래도 끊겨
은행 대출 중단… 투자자·개발회사들 도산 위기
한국 업체도 비상… "지금이 투자 적기" 시각도
작년 말까지 호찌민의 '빙즈엉무역개발'이란 부동산 회사에서 잘나가던 판매 사원이었던 응웬 꿕 중(Dung·38). 당시 그는 가구당 25억 동(Dong·1억2500만원)짜리 빌라를 매달 10채 이상 팔면서 1채당 0.3%의 수수료를 받았다. 한 달에 무려 1억5000만 동(9300만원)의 수수료를 챙긴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채권자 대신 빚을 받으러 다니는 추심인으로 일한다. 월급은 고작 200만 동(12만원). 올 들어 베트남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서 회사 측이 당분간 다른 일자리를 구하라고 요청했던 것. 그는 "판매 사원 30명 가운데 10명이 이미 짐을 쌌다"고 말했다.
◆거래 '뚝'…일부 아파트 값 50% 폭락
지난 2~3년간 뜨겁게 달아올랐던 베트남 부동산 시장에 급(急)브레이크가 걸렸다. 오르기만 하던 호찌민, 하노이 등 대도시 아파트 값은 올 들어 일부에서 최대 50%나 폭락하면서 '버블'(거품)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호찌민시 7군 지역에 개발 중인 '� 끄엉 자 라이'(Qouc Cuong Gia Lai) 아파트. 지난 2월 ㎡당 1800만~2000만 동(112만~125만원)을 호가했지만, 최근엔 1400만~1500만 동까지 가격을 낮춰도 찾는 이가 없다. 하노이 '센추리' 부동산 회사의 응웬 쭝 부(Vu) 이사는 "요즘엔 20억 동 이하 소형 아파트만 간간이 거래된다"면서 "그나마 투자 목적은 없고, 실수요자만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회사인 페트롤리멕스(Petrolimex) 관계자는 "작년 말보다 아파트 거래량이 30~40%나 줄었다"고 밝혔다.
◆돈줄 막혀 투자자·디벨로퍼 파산 위기
호찌민에서 2건의 아파트 사업을 추진 중인 현지 개발업체 A사는 최근 날벼락을 맞았다. 자금 지원을 약속했던 은행이 지난달 초 대출 중단을 선언한 것. 이 회사 관계자는 "은행 측이 연 10%로 계약했던 금리 조건을 22%로 배 이상 올리더니, '우리도 자금난을 겪고 있다'며 아예 손을 들어버렸다"고 말했다.
잘 나가던 베트남 부동산 시장이 급랭한 이유는 뭘까. '돈줄'이 마른 탓이다. 정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통화 환수에 나섰고, 지난해 마구잡이로 대출에 나섰던 시중 은행은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자, 부동산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고, 금리도 대폭 올린 것.
디벨로퍼(부동산 개발회사)들도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사콤리얼'(Sacomreal) 등 일부 개발회사는 월 1%대 이자 지급 조건으로 프로젝트 채권을 발행, 가까스로 사업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레 황 쩌우(Chau) 호찌민부동산협회장은 "부동산 값이 내재가치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돈을 쓸 투자자가 없다"고 말했다.
◆버블 붕괴, '위기인가, 기회인가'
현지에 진출한 한국 업체들도 고민에 빠졌다. 베트남 위기설이 터진 지난달 말부터 호찌민 안푸(An Phu)에서 1차 분양 중인 '벽산블루밍'(700가구)은 '분양가 보상제'를 내놓고 수요자 붙잡기에 나섰다. 회사 관계자는 "2·3차 분양가가 1차보다 낮으면 차액만큼 계약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초 하노이에 70층짜리 초대형 주상복합을 선보일 경남기업도 비상이 걸렸다. 하종석 지사장은 "입지가 좋아 수요자는 많이 확보돼 있지만, 가격 책정이 변수"라고 말했다. 인허가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일부 기업은 내심 "오히려 다행"이란 반응이다. 베트남에 크고 작은 부동산 개발을 추진 중인 한국 업체는 줄잡아 100여곳. 투자 예정 금액만 20조원을 웃돈다.
베트남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고 있지만, 지금이 오히려 투자 적기(適機)라는 견해도 있다. 일부 외국계 기업은 올 들어 더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계 '캐펠랜드'와 말레이시아계 '베르자야 랜드'는 호찌민에 각각 1만 가구의 아파트와 900㏊ 규모의 국제대학촌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분간 가격이 더 빠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세빌스베트남'의 브렛 애시턴(Ashton) 상무는 "베트남 주택 시장은 국민소득을 감안할 때 너무 빨리 올랐다"면서 "일부 지역은 10~20%쯤 가격이 더 떨어지고, 시장이 다시 오르려면 6개월~1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