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청진동·중구 다동 일대 재개발
빈 사무실 없을 정도로 공급 부족 사태
청진옥·한일관 등 철거 옛 정취 사라져
"어? 여기도 문을 닫았네…."
21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뒤편의 청진동 골목. 점심식사를 위해 총총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던 30대 남자 3명이 대구탕 집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이 지역 음식점들이 재개발 사업에 따른 철거를 앞두고 속속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원 구동준(42)씨는 "그동안 습관처럼 다니던 음식점들이 재개발로 잇달아 이사 가고 있다"며 "몇 개월만 지나면 이곳에서 음식점 찾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구 청진동과 중학동, 중구 다동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구(舊)도심 상가의 이주와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이들 지역을 업무와 상업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초고층 복합단지로 개발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지난 30년간 지지부진했던 광화문 일대가 재개발 사업을 통해 강남 테헤란로(路) 등에 빼앗긴 상업·업무 지역으로서의 명성 찾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심 재개발 사업에 신규 사옥 들어서
광화문 일대 도심 재개발 사업은 크게 종로구와 중구로 나뉘어 진행된다. 우선 총 19개 지구로 나뉜 종로구 청진동 개발사업 중에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종로구청 맞은편인 5지구. 올해 안에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연면적 3만 7350㎡ 규모의 빌딩을 지을 예정이다. 교보빌딩 뒤편에 있는 청진동 2·3지구의 경우 개발이 완료되면 지상 23층 높이의 오피스 건물 2개 동이 들어선다. 한일관과 청진옥, 서울관광호텔이 위치한 12~16지구도 오피스 빌딩 건립이 예정된 상태.
서울의 대표적 '먹자 골목'인 중구 을지로 일대도 오피스 복합시설로 바뀌고 있다. 중구 다동에서는 오는 11월 지상 23층 규모의 오피스 빌딩이 착공되고, 옛 하동관이 있던 자리는 39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이 지난해 8월 공사에 들어갔다. 올 상반기부터는 중구 저동 백병원 옆에 최고 31층, 3개 동 규모의 복합단지 '101 파인애비뉴'가 지어질 예정이다.
기업체들도 광화문 주변에 사옥을 새롭게 단장하는 데 한창이다. 구세군회관 맞은편에는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옥이 지어져 오는 9월 입주를 시작하는 데 이어 동국제강은 지난 33년간 본사로 활용해 온 중구 수하동 사옥을 28층 높이의 최첨단 빌딩으로 짓고 있다. 아울러 1980년에 완공된 교보생명 빌딩은 초현대식 빌딩으로 변신하기 위해 지난 3월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빈 사무실이 없을 정도의 공급 부족
서울 도심의 재개발사업이 최근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턱없이 부족해진 오피스 공급량 때문이다. 부동산투자자문업체 '알투코리아'에 따르면 2006년 초 3.6~3.7%였던 도심의 오피스 빌딩 공실률은 작년 초 2.0%를 거쳐 최근에는 1.0%까지 내려갔다. 사무실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공실(空室)을 제외하면 사실상 빈 사무실이 없는 셈.
임대료도 많이 올랐다. 2006년 초 평균 3.3㎡당 6만4600원이었던 강남 사무실의 평균 월세는 작년 초 6만5900원에서 최근 6만8300원으로 상승했다. '알투코리아' 김태호 시장분석팀장은 "도심에 개발할 만한 땅이 부족한 데다 주상복합과 오피스텔 공급이 주를 이루면서 오피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재개발 보상비… "점포당 100억원 이상도"
본격화된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서울과 역사를 같이한 시내 음식점들도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자장면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신승관'은 지난 16일 폐업했고 1950년대 이후 종로 최고의 맛집으로 꼽혀온 '한일관' 역시 이달 말까지만 영업한다. 1937년 이래 청진동 골목을 지켜온 '청진옥'도 7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밖에 중구 다동 골목에 있는 '부민옥', '용금옥', '오륙도' 등도 오는 10월까지 철거될 예정. 그리고 이들 음식점들은 재개발 과정에서 최대 100억원 이상 보상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청진동 개발 소문이 퍼지면서 3.3㎡당 5000만원대였던 땅값이 1억원을 훌쩍 넘겼다"며 "개발 예정지의 크기를 생각하면 전체 보상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개발 사업에 옛 자취 사라져
도심 재개발이 짧은 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오랜 역사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이들 지역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개발이 이뤄진 청진 6지구의 경우 바닥에 대리석이 깔리고 길 양쪽에 현대식 가게들이 들어서 옛 피맛골의 정취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게다가 이들 지역에 초고층 빌딩 10여 개가 거의 동시에 들어설 경우 대규모 공실 사태가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자산관리업체 'KAA' 홍지은 팀장은 "오피스 신규 수요가 매년 66만~99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규모의 물량은 과잉 공급 현상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