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부동산 거래 양극화

뉴스 탁상훈 기자
입력 2008.05.09 22:13

종부세·양도세 부담으로 10억원 넘는 아파트 경매시장서도 뒷전
분양·대출 제한없는 오피스텔, 최근 들어 최고 2배 급등한 곳도

자영업자 남편을 둔 박모(45·서울 양천구)씨는 최근 10억원 정도를 투자할 요량으로 거래 은행의 PB팀을 세 차례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러나 박씨는 마음에 쏙 드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당분간 현금을 갖고 있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상가는 불경기로 수익률이 좋지 않고, 다세대를 여러 채 살 수도 없지 않으냐"며 "정부 규제가 확실히 풀리거나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10억원 이상의 자산을 굴리는 이른바 '큰손' 투자자들은 관망세로 돌아서는 반면, 1억~2억원대의 소액 투자가 가능한 시장에는 투자자들이 몰려 가격이 치솟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가 당초 기대와 달리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데다, 분양가 상한제 실시와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 등으로 국내외 투자 전망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고가 아파트는 경매에서도 '찬밥'

실수요자보다 투자자들이 주로 참여하는 부동산 경매시장의 경우, 고가(高價) 아파트는 완전히 뒷전 신세이다. 10억원이 넘는 아파트의 경매 매물이 늘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냉랭하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수도권 아파트의 경매 물건 가운데 10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1분기 0.9%에서 작년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4.3%, 4.8%로 올랐다가 최근에는 7.3%를 기록했다.

그러나 10억원 이상 아파트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격의 비율)은 지난 3월 77%로 서울·수도권 평균 낙찰가율(89.3%)을 훨씬 밑돌았다. 지난달에도 전체 낙찰가율(92.4%)과 10억원 이상 아파트(84.7%) 간에 격차가 계속 벌어졌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기존 주택 시장에서 처분이 되지 않는 고가 아파트가 경매 시장으로 넘어오지만, 종부세와 양도세 부담으로 경매 시장에서 관심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골프장 회원권·해외 부동산 투자도 주춤

상대적으로 여유 자금이 많은 투자자들이 주로 하는 해외 부동산이나 골프장 회원권 투자도 위축세가 완연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 1분기 2억5000만달러(629건)였던 국내 거주자의 해외 부동산 취득 금액은 올 1분기에는 1억4600만달러(421건)로 42% 감소했다.

올해 초까지 급등했던 골프장 회원권 가격도 최근 조정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말 6억원 정도였던 경기도 파주의 S골프장 회원권 가격은 지난 3월 9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9억원으로 떨어졌다. 올해 초 9억5000만원이었던 양주의 S골프장 회원권 역시 이달 들어 8억6000만원으로 하락했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 손중용 과장은 "저가의 회원권 시장을 제외한 10억원대의 고가 회원권은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 등으로 매수세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오피스텔·연립주택 등 소형 거래는 활발

맞벌이 부부인 이모(여·36·서울 성동구)씨는 이달 초 부동산중개업소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2000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사놓았던 오피스텔 한 채(76㎡)를 2억원에 팔라는 것. 이씨의 오피스텔 분양가는 1억3000만원. 2~3년 전만 하더라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9000만원까지 떨어진 '애물단지'였지만, 최근 소액 부동산에 돈이 몰리면서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뛴 것이다.

부동산 침체기에 오피스텔이 각광 받는 것은 고가 아파트와 달리 소액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 오피스텔에 투자했더라도 일반 아파트를 분양 받는 데 제한이 없고 부동산 대출 규제 나 종부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매력이다. 그 결과 작년과 올해 서울의 오피스텔 평균 가격은 1.92%, 2.43%씩 올라 같은 기간 아파트 상승 폭(0.82%, 2.16%)을 웃돌았다.

다세대·연립주택도 마찬가지다. 뉴타운·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소액 투자자들 사이에 '묻지마' 투자 열풍이 불면서 2억원 안팎의 집값이 연초 이후 4000만~5000만원씩 올랐다.

'닥터아파트'의 이진영 리서치팀장은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더 많은 수익을 챙기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조정·침체기에는 적은 돈으로 투자 가능한 상품을 찾는 다"며 "당분간 부동산 시장에서는 소액 투자 가능 상품이 인기를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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