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뉴타운 지역 빌라 입찰에 63명이 응찰
새 정부 재건축 기대감으로 연립 주택 인기
서울 서부지방법원 4층 경매 법정. 교실 두 개 크기만한 법정과 주변 복도는 400여명에 달하는 응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법정 안으로 한 번 들어간 사람은 아예 밖으로 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체온으로 후끈 달아오른 실내 공기로 모두들 외투를 벗고 연방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에어컨 좀 켜주세요!" 손 부채를 하던 한 응찰자가 법원 직원에게 외쳤다. 최근 주택 경기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경매에 대한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부동산 경매 법정이 연일 북적이고 있다. 특히 경매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낙찰률(경매 진행 물건수 대비 낙찰건수)과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격의 비율)도 조금씩 높아지는 모습이다. 부동산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은 2006년 상반기에 부동산 법원 경매 1건당 평균 5.15명이었던 응찰자 수가 작년 하반기에는 7.18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높은 경쟁률에 감정가보다 높은 낙찰가
부동산 경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경쟁률이 높아지다 보니 낙찰 가격도 계속 올라가는 양상이다. 이날 열린 경매에서 가장 주목 받은 물건은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A빌라(전용 64㎡). 은평 뉴타운 인근 지역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물건 하나에 63명이 응찰에 나선 것. 이로 인해 집행관들이 응찰 가격을 정리하고 최종 낙찰자를 정하는 데만 무려 1시간이 걸렸다. 최종 낙찰가는 1억7789만원. 최초 감정가(1억1000만원)보다 7000만원 가까이 높은 가격에 낙찰이 결정되자 조용했던 법정이 "말도 안 돼", "미쳤어"라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지옥션' 박갑현 연구원은 "예전에는 물건 하나에 응찰자가 30명만 모여도 많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100명이 몰리는 등 다소 과열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다세대·연립 주택이 가장 큰 인기
이날 경매 진행 시간이 20~30분 이상 걸릴 정도로 인기를 모은 물건은 대부분 다세대·연립 주택들이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B주택(52㎡)은 33명의 응찰자가 몰려 1억5789만원(감정가 1억1000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은평구 응암동 C빌라, 은평구 구산동 D주택 등도 모두 15~20명이 경매에 참가해 감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다.
경기도 일산에서 공인중개업을 하고 있는 강모(50)씨는 "2년 전만해도 은평, 용산, 마포 지역의 다세대 주택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뉴타운·재개발 영향으로 값이 너무 올랐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다세대 주택 경매에 응찰한 박모(48)씨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재개발 사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생각에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남녀노소에 경매 초보자까지 경매에 관심
"인감 도장은 어디에 찍어요?", "대리인 서명은 어디에 해야 돼요?"
이날 법정 안팎에서는 경매 초보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경매 절차나 요령을 묻는 질문이 거의 쉼 없이 이어졌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로 가득했던 법정에서 20대 젊은이와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도 달라진 모습. 20대 한 커플은 법정 안팎을 돌아다니며 벽에 걸려진 경매 진행 순서 등을 메모하고 있었다. 이날 경매 법정을 처음 찾았다는 박모(28·노원구 하계동)씨는 "요즘 경매가 열풍이라는 얘기가 들리는 데다 친구들이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는 것을 보고 사무실에서 잠시 나왔다"고 말했다.
◆"물건의 정보 분석 등 꼼꼼히 따져야"
그러나 부동산 경매는 일반 부동산 거래보다 절차가 훨씬 복잡하고 따져봐야 할 부분도 상당히 많다. 그런 만큼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성급하게 투자하기보다 경매의 기본 지식을 쌓고 관심 물건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분석한 뒤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최근 경매 관련 인터넷 동호회가 활성화되는 등 부동산 경매가 대중화돼 가는 모습"이라며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반 시세보다 높게 낙찰되는 경우가 나오는 만큼 투자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