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평형대 아파트 전세 물건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씨가 말랐어요.”

서울 강북구 번동 ‘서울랜드 공인중개’ 김상태 사장은 “작년 하반기 전세난보다 더 심각한것 같다”며 “5명 이상이 전세 물건을 예약해 놓고 있지만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매물 부족으로, 작년 말 8000만~8500만원 하던 20평형대 전세 호가(呼價)가 최근 1억원까지 올랐다. 본격적인 봄 이사철을 맞아 서울 강북지역과 신도시 일부 지역에서 20평형대 아파트 전세매물 부족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사철마다 전세 가격 급등을 주도했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도곡동은 전셋집을 보러 오는 발길이 거의 끊겼다. ‘럭키공인중개’ 최웅 실장은 “전세 수요가 줄면서 30평형 전세 가격이 작년 말 3억5000만원에서 2억8000만원까지 급락했다”고 말했다. 전세 수요자를 구해 달라는 의뢰가 평형별로 10건 이상씩 쌓여 있지만 문의조차 없다는 것.

◆재개발 이주수요까지 겹쳐 전세 물건 부족=서울 휘경동 ‘삼성 래미안 공인중개’ 박순예 사장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내집 마련 수요가 전세 수요로 전환되면서 전세 부족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전세가 귀해 이사를 하기보다는 전세금을 올려 주고 기존 주택을 재(再)계약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난 것도 신혼부부 등 신규 수요자들의 전셋집 구하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재개발 이주수요가 전세난을 부추기고 있다. 성북구 길음동 ‘동성 공인중개’ 노현숙 사장은 “길음 뉴타운의 재개발사업으로 2000여 가구가 한꺼번에 이주하면서 주변지역의 전세 물건이 바닥났다”고 말했다. 성동구 옥수동 ‘옥수공인’ 황서윤 대표도 “재개발로 인해 전세가 부족, 30평형대를 중심으로 연초보다 2000만~3000만원 올랐다”며 “40~50평형대는 시세가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강남 대치동 전세 가격 급락=다른 지역과 달리, 강남권 전세시장은 안정된 상태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연초에 비해 3000만~4000만원 전세가격이 하락했고 매물도 여유가 있다. ‘K공인중개’ 관계자는 “작년 11~12월 방학을 이용해서 이사를 하는 ‘학군 이사 수요’로 급등했던 전세 가격이 제자리를 찾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도곡동 ‘럭키공인’ 최웅 실장은 “내신성적이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뀐 새 입시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학군 이사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권 전세금이 워낙 비싸다 보니 다른 지역과 달리, 신혼부부 등의 전세 수요가 많지 않은 점도 전세가 하락의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저스트알’ 김우희 상무는 “강남권은 ‘학군 이사 수요’ 외에는 수요가 많지 않아 방학이 끝나면서 전세 수요가 실종된 상태”라고 말했다. 다만, 서초구 서초동·잠원동 등은 삼호가든 아파트 1000여 가구가 재건축을 위해 한꺼번에 이주, 전세 가격이 강세이다.

◆입주물량 감소가 불안의 근본요인=전문가들은 소형 평형 전세매물 부족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114’ 조사 결과, 아파트 입주물량은 서울의 경우 작년 4만5765가구에서 올해 3만419가구, 경기도는 작년 9만805가구에서 7만1177가구로 감소한다. 원룸 등 다가구주택 건설도 2002년 10만 가구에서 지난해 7000여 가구로 급감했다.

아파트 분양제도의 변화도 전세 수요를 늘릴 전망이다. 오는 9월부터 분양가가 규제되고 무주택자 등에게 당첨우선권을 주는 청약가점제가 도입된다. ‘부동산 114’ 김희선 전무는 “무주택자들이 집을 사기보다는 전셋집에 살면서 분양가 규제를 받는 저렴한 아파트에 청약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며 “소형 평형 중심의 수급 불균형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