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도 넘치고… 미분양도 넘치고 “집 살 사람은 한명도 없어요”
“지금 부산에는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보면 됩니다.”
부산 민락동의 회사원 강모(36)씨는 “급한 자금 마련을 위해 지금 사는 집을 1년 전에 매물로 내놓았지만 팔리기는커녕 집 보러 오는 사람조차 끊긴 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부산에 본사를 둔 한 건설업체는 분양사업부 일부만 이곳에 남겨두고 사실상 서울로 본사를 옮겨갔다. 대형 건설사들도 부산·경남지역의 사업본부를 크게 줄였다. 지방의 주택경기 침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방의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면서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8년 만에 최고치까지 올라갔다. 또 지방 집값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 서울·수도권 등을 제외하면 ‘집값 거품론’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부산의 미분양 주택, 실제로는 2만채 이상”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7만3772가구로 1년 전에 비해 28.9%나 늘어났다.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말 10만2701가구를 기록한 이후 8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 지역별로 따져보면 지방의 주택시장 불황이 잘 드러난다. 미분양 주택 수가 서울·수도권(4724가구)은 2005년보다 61.4% 줄었지만. 지방(6만9048가구)은 55.5%나 늘었다. 실상은 공식 통계보다 더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부산의 경우 미분양 물량이 공식 통계로는 9000여채이지만 실제로는 3배는 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주택경기가 침체돼 있다는 진단이다.
집값도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전년 말 대비 주택 매매가는 서울 강남이 2005년에 9.4%, 2006년에 20% 올랐고, 경기도도 각각 5.5%, 20.6% 올랐다. 하지만 대구는 7.6%와 1.5%, 광주는 4.1%와 3% 오르는 데 그쳤다. 특히 부산은 2005년과 2006년에 1.1%, 0.7% 떨어져 전국에서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공급은 과잉
지방의 주택시장 불황은 수급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부산 인구는 1995년 385만명에서 작년 말 361만명으로 줄었다. 출산율은 전국 대도시에서 가장 낮고, IMF 위기 이후 부산의 업체 1000여곳이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여기에다 지방일수록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점도 주택 수요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새로 가정을 꾸려 새 집을 마련하려는 젊은 세대가 지방에서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2~3년 전부터 불었던 건설사의 지방 진출 러시 때문에 공급은 과잉인 상태. 여기다가 정부가 추진하는 ‘비축형 장기 임대주택’까지 도입될 경우 지방에는 더 큰 파장이 우려된다. 황용천 ‘해밀컨설팅’ 대표는 “11~24평형인 국민임대주택과 달리 비축형 장기 임대주택은 30평대로 중산층 실수요자가 선호하는 평형”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미분양 물량이 많은 지방 아파트시장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기과열지구 해제가 한 가닥 희망?
지방 주택경기의 변수는 투기과열지구 해제 여부라는 분석이다. 국회와 정부는 오는 9월 이전에 부산·대구·광주 등 3개 광역시를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투기과열지구는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보다 현저히 높은 지역을 골라 건설교통부 장관이 지정한다.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될 경우 해당 지역에서는 1가구 2주택자들도 청약이 가능해지고 전매 제한 규제도 없어진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대표는 “투기과열지구 해제 여부가 지방 주택경기가 완전히 사그라지느냐 조금씩이라도 회복하느냐의 관건”이라며 “해제될 경우 지방의 미분양 물량이 조금씩 소화되면서 주택시장이 숨을 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김우희 저스트알 상무는 “지금처럼 주택 수요를 반강제로 끌어내리는 상황에서는 웬만한 조치로는 지방의 주택시장이 회복세로 쉽게 돌아서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