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은평뉴타운에 후분양제 도입
애초부터 “용적률 낮춘 고급단지로” 잘못된 개발
“분양가 내릴 가능성 없어”…오히려 금융비용 추가
서울시가 은평 뉴타운의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최고 2배 가까이 높게 책정, 안정세를 되찾아 가던 주택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은평 뉴타운 분양가가 너무 높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은평 뉴타운 분양시기를 내년 9~10월로 연기하는 등 후(後)분양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서울시 SH공사측은 “사업비가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에 후분양을 해도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후분양에 따라 자체 자금으로 공사비를 먼저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평당 15만원 정도의 금융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후분양제는 현재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애초부터 분양가에 대한 사전검토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벌여 발생한 부작용이라며 현행 뉴타운 개발 방식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애초부터 잘못된 개발 목표=서울시의 개발목표는 애초부터 저렴한 주택의 공급이 아니었다. 강남에 필적할 ‘리조트 같은 생태전원도시’를 강북에 짓겠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용적률. 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을 나타내는 용적률이 153%로, 대전 노은 2지구(220%), 경기도 용인 죽전(195%)보다도 낮다. 용적률이 낮다 보니 같은 땅에 지을 수 있는 주택이 적고 분양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규모의 용인 죽전(108만평)의 가구 수가 1만8500가구인 데 반해 은평(105만7000평)은 1만5200가구에 불과하다. 아파트 높이도 평균 10층. SH공사 관계자는 “분양가가 오르더라도 용적률을 낮춰야 고급단지가 된다는 설계 자문단과 고위층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용적률을 200%로 올렸다면 평당 가격을 최고 200만원까지도 낮출 수 있었다. 한양대 김관영 교수는 “주택이 부족한 서울의 현실을 너무나 무시한 계획”이라며 “서울시는 용적률을 높여 저렴한 주택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가 입찰제도 채택 안 해=고급단지에 대한 ‘집착’으로, 최저가 입찰제를 도입하지 않은 것도 분양가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SH공사는 건설회사에 아파트 공사를 맡겼다. SH공사 관계자는 “유명 건설사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이윤이 박한 최저가 입찰제를 실시하지 않았다”며 “덕분에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최저가 입찰제를 채택했다면 건축비가 20~30% 정도 낮아질 수 있었다.
토지보상비가 너무 비싼 지역을 선택한 것도 문제. SH공사 문완식 차장은 “보상비가 평당 360만원으로, 판교보다 113만원이나 비싸다”고 말했다. 토지공사는 판교 신도시 개발을 통해 거둔 수익 1조9000억원을 양재~용인 고속화 도로, 신분당선 등 교통망에 투자한다.
반면 서울시는 높은 분양가에도 주변 교통망에 투자할 돈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단지는 고급이지만 주변 교통망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후분양제는 미봉책=서울시는 은평뉴타운을 비롯, 발산·내곡·장지지구 등 시(市)가 짓는 모든 주택에 후분양제를 채택하기로 했지만 한번 잘못 꼬인 매듭이 풀릴지는 의문이다. 특히 후분양 도입으로 서울시는 건설 기간의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후분양제 전환에 따라 공급물량 감소라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2~3년에 걸쳐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나눠서 내는 선(先) 분양과 달리 후분양은 단기간에 목돈을 내야 한다.
여유자금이 없는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주택공급이 부족한 서울에서 후분양제는 아파트 공급을 더욱 축소시켜 가격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어떤 뉴타운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