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0대 주부 "전세값 3000만원 뛰어 이사 어떻게 갈지 막막"
부산 수학교사 "진짜 집부자는 꿈쩍안해 빚내 산 사람만 걱정"
전주 30대 회사원 "전세값 3000만원 뛰어"
올 추석 명절, 최대의 경제 화제는 단연 ‘8·31 부동산 대책’이었다. 모처럼 모인 가족과 친지들은 부동산 문제를 놓고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했다. 대책 발표 후 보름여 만에 전국 곳곳에서 ‘사랑방 좌담회’가 열린 모습이었다.
추석 때 각자 고향집을 찾았던 본지 경제·산업부 기자들의 취재 결과 모인 추석 부동산 민심은 ‘전국은 지금 고민 중’이라는 단어로 요약됐다. 집이 있는 사람은 세금과 매도 타이밍으로 고민을 토로했고, 집이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전셋값과 매수 시점을 놓고 생각이 복잡했다.
차례상을 앞에 놓고 즉석에서 부동산 상담이 열리는가 하면, 집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혹은 수도권과 지방, 강남인지 강북인지에 따라 입장이 갈려 분위기가 서먹해지기도 했다. ‘집값 하락’을 예상한 민심이 대세였으나, ‘폭락’ 의견은 드물었고, 중장기적으로는 ‘반등’을 예견하는 계산도 만만치 않았다.
◆세금 불만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은 세금을 불평했다. 8·31대책과는 상관없이 이미 예정된 세금 인상이지만, 7월과 9월에 절반씩 날아온 재산세 고지서에 적힌 액수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전모(55)씨는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부동산 얘기가 나오자 “20만원쯤 나오던 재산세가 30만원으로 불었다. 은행에 내는 이자 부담도 적지 않은데 이렇게 세금을 높여도 되느냐”고 흥분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조카 안모(37)씨는 “재건축 아파트 값이 많이 뛰었으니, 세금 조금 더 내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세금 부담이 커져도 집값은 안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의 대기업 임원 K(62)씨는 인사 온 사위에게 “내년에 종부세 대상이 되기 때문에 세금도 많이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자식 세대를 생각하면 집 있는 사람이 세금을 조금 더 내서라도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1가구 2주택 고민
애매하게 부동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 걱정이 많았다.
1가구 2주택자인 충남 아산의 50대 주부 최모씨는 “집 한 채만 갖고 늙어 죽을 때까지 살라는 얘긴데, 그게 우리 정서에 맞느냐”고 했다. 그러자 서울에서 내려온 딸은 “1가구 2주택을 어떻게든 처분하지 않으면 큰일난다”며 “혼자 살면서 늘어나는 세금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느냐”고 빨리 집을 처분하라고 조언했다.
부산진구 A고교 수학교사 강모(38)씨는 차례가 끝나고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학교 내 교사들 분위기를 전했다. “진짜 땅부자, 집부자로 통하는 선생님은 눈도 깜짝 안 해요. 재산 한번 불려보려고 빚내고 해서 집이 두 채가 된 교사들만 집을 빨리 팔아야겠다고 걱정입니다.”
◆전셋값 걱정
집 없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뛰는 전셋값 때문이다. 오는 11월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주부 K(32·서울 마포구)씨는 친정 근처로 이사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친정어머니에게 푸념했다. “송파구 30평대 아파트 전셋값이 몇 달 새 3000만원 이상 뛰었다”며 “전셋값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결혼을 앞둔 회사원 H(31)씨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혼집으로 살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다 맥이 풀렸다고 했다. 지난달 봐 두었던 서울 강북의 20평대 아파트 전셋값이 한 달 새 2000만원이나 뛰었기 때문이다.
◆“집값 떨어져야”
집 없는 사람들은 최근의 집값 하락을 환영하면서도 아직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이다. 회사원 박모(33·서울 동대문구)씨는 경남 합천 고향에 내려가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모인 자리에서 “집값이 더 내리면 더 좋은 것 아니냐”며 “어차피 평생 살집이라면 좀 내린다고 뭐가 대수냐”고 말했다.
지방 사람들은 서울 집값 걱정이 많았다. 전북 전주에 사는 이모(65)씨는 “전주에 갖고 있는 아파트 3채를 팔아 서울로 이사하려 하는데, 다 팔아도 서울에 20평대 한 채를 못산다”면서 “8·31대책으로 서울 집값이 확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값 전망은 엇갈려
하지만 향후 집값 전망에 대해서는 엇갈렸다. 경기도 용인시 홍모(67)씨 가족은 온 식구가 모인 김에 부모님이 살고 있는 수지 지역 아파트를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했다.
큰아들(37)은 “아무리 세금이 많아져도 도로가 생기고 편의 시설이 늘어나면 집값은 오른다”고 했고, 다른 형제도 “다들 정부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07년까지는 기다리는 것을 상책으로 믿고 있다”고 거들었다. 가족들은 당분간 집을 팔지 않기로 결론냈다.
반면 서울 강북에 거주하는 회사원 최민철(37)씨는 “이제 부동산 갖고 재산을 불릴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다”며 “갖고 있던 오피스텔을 2000만원 정도 손해보고 팔아 그중 일부를 우량 주식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경제·산업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