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김포는 지금 '패닉' 상태

뉴스
입력 2004.07.04 11:28 수정 2004.07.05 09:44

'신도시' 1년만에 3분의1토막…시민 "정부 믿다가 망해"

경기도 김포시에서 16대째 살고 있는 A씨는 장기지구에 조상이 묻혀 있는 묘를 포함한 땅 수 만 평을 갖고 있었다. 이 지역은 몇 년 전부터 택지지구로 개발되는 계획이 있던 지역. A씨의 땅은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국가에 수용됐다. 더군다나 작년 5월엔 김포 신도시 계획이 발표됐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고향에서 멀리 떠나는 대신 가장 가깝고 신도시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던 48번 국도 옆의 고창 지역에 보상 받은 돈의 상당부분을 털어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A씨는 지난달 28일 정부가 김포 신도시를 480만평에서 150만평으로 줄인다는 소리를 듣고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건교부는 신도시 계획을 축소하면서 당초 계획에 포함된 지역에서 330만평을 ‘빼기’만 해서 150만평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당초 계획에서 약 355만평 정도를 빼고 새로운 지역 약 25만평을 더해 150만평을 지정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문에 따르면, A씨가 산 땅은 새로 편입된 지역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A씨는 토지를 싼 값에 수용당하고, 보상금으로 산 땅이 또 수용당하게 생겼다. A씨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예정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당신은 아느냐”고 반문했다. 망연자실(茫然自失)이라는 말로도 A씨의 심정을 표현하기는 힘들다.

김포는 집단적, 정신적 공황인 패닉 상태다.
지난달 28일 불과 1년 1개월 전에 발표된 신도시 계획이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되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건교부는 축소 계획이 발표한 지 1주일이 지나도록 어느 지역이 신도시에서 빠지고 어느 부분이 새로 편입됐는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 정책이 어처구니 없이 뒤바뀌면서, 김포시민들의 마음은 까맣게 타고 있다.


◆ 1년 전엔 ‘급변하는 안보 상황’을 ‘개략’ 협의한 정부

건설교통부는 불과 1년 전인 2003년5월 김포에 480만평, 파주에 275만평의 신도시를 각각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거의 동시에 건교부는 이 지역 일대를 토지 거래 허가 지역으로 묶었다. 시민들은 마음대로 거래를 하기도 힘들었다.

그로부터 1년 1개월이 지난 지난 6월28일 건교부는 “국방부와 다양한 대안을 놓고 건교부와 긴밀한 협의를 벌인 끝에 150만평 수준으로 김포 신도시를 줄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의 반대가 유일한 이유인 셈.

건교부가 김포신도시를 축소한다고 발표한 보도자료 중 축소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건교부는 작년 5월 국방부와 사전 개략협의를 거쳐 발표했으나, 그 이후 국방부가 수차례 현지 점검을 통해 정밀 분석한 결과, 군사 시설문제로 규모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건교부에 축소된 규모로 최종 협의해옴에 따라, 건교부는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감안하여 일단 국방부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한 것임.”

간단히 말하면, “1년 전엔 개략 협의를 했다가 정밀 분석을 해보니 아니더라. 그래서 국방부 요청 대로 줄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작년 5월의 신도시 계획은 ‘개략’ 발표됐었음을 건교부가 자인한 셈이다. 개략 발표된 계획에 따라 토지거래 허가지역까지 지정됐다는 얘기다.

김포시청 홈페이지 등에는 “한반도 안보상황이 그 때나 지금이나 뭐가 달라졌는지 설명이나 좀 들어보자”는 글이 수없이 올라와 있다. 더군다나 군사 정보에 어두운 일반인들이 더 북쪽에 위치한 파주시는 괜찮고 김포는 안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건교부는 “일단 150만평으로 추진하되 2012년까지 신도시 개발 기간 동안에 남북간 화해와 협력이 진척되는 상황을 보아가며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년 전에 남북관계를 생각하고, 국방부와 협의만 제대로 했다면 1년만에 중앙 정부가 자기 말을 바꾸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 된다.




◆ “정부를 믿은 우리가 죄인이지 뭐…”

지난달 30일 김포 신도시계획이 예정돼 있던 10번 시도(市道). 이 주변에 빽빽히 들어차 있는 부동산 업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부를 성토하고 있었다. 한 업자는 “김포 시민은 신도시를 반대했든 안했든 모두 피해자”라고 말했다.

원래 김포 신도시 계획은 여러 이해 당사자를 갖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갖고 있던 농민들은 심하게 반대 투쟁을 벌였었고, 아파트 주민들, 서울에서 온 투자자들, 김포 시청 등은 찬성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건교부의 축소 발표로 이들은 모두 피해자가 됐다. 원래 480만평 계획은 정방형에 가까웠지만, 축소된 신도시 계획에 따라 생길 신도시는 쥐가 파먹은 듯한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부동자 업자의 B씨의 말이다.
“농사 짓는 사람들은 토지가 수용되어도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 김포 다른 지역에 돈을 마련해서 땅을 샀어요. 신도시가 되면 주변 땅값이 오르잖아. 그러니 서둘렀지. 그런데, 이제 아니라잖아. 그 사람들 다 망했어. 목 맬 사람이 안나오길 빌고 있어. 어처구니가 없어, 이젠 오히려 웃음이 나와.”

부동산 업자 C씨는 서울에서 온 투자자에게 신도시 주변 농지 1200평을 2억5000만원 정도에 사도록 중개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C씨는 “최근에 땅을 산 사람들이 있다”며 “이 사람들이 부동산에 항의 전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C씨는 “벌써 작년 1년 동안 떴다방들은 ‘미등기 매매’를 통해 두 배 이상씩 이익 챙기고 떴다”며 “정부말 믿고 중개해준 내가 죄인”이라고 자책했다.

김포 신도시 반대 투쟁 위원회의 이훈구 기획실장은 “반대론자들이 자기 고향을 생선 가시 발라 먹듯이 만들어 놓으면 좋아할 것 같은가”라며 “이런 계획이라면, 자급자족은 물론 서울 사람들이 이사올 리도 없기 때문에 분양도 안 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작년 5월 이후 모든 행정을 신도시 480만평에 맞춰왔던 김포시청 공무원들은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 공무원은 “토지 수용가격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김포시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욕을 다 먹고 신도시 일정에 맞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축소안대로 해서는 난개발로 빠질 가능성이 많다”며 “다시 원점부터, 이번엔 제대로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포시민들 600여명은 지난 2일엔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신도시 조성 계획을 완전 철회하든지 적정한 보상을 하든지 정부가 택일하라”라고 주장했다.

◆ “제발 경전철은 약속대로 해주기를”

김포 시민들이 더 황당해 하는 것은 교통 정책. 원래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건교부는 김포~양촌, 외발산~양촌 등 2개 도시고속도로와 경전철을 놓겠다는 교통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중 외발산~양촌 고속도로는 계획 자체가 취소된다.

건교부는 대신 신도시 계획을 축소하면서, “경전철만은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표현을 넣었다. 신도시 이전에 건설된 김포 풍무지구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오모씨는 “건교부 자체도 자기 발이 저린지, ‘반드시’라는 말을 넣어놨던데, 제발 그렇게 약속대로 해주기를 바란다”며 “다만, 서울에서 김포로 가는 유일한 길인 48번 국도가 왕복 8차로로 확장되는 데 몇 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축소 계획만 발표하고 어느 지역이 빠지고 어느 지역이 들어가는지는 발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정해졌지만, 여건이 되는지 확인해보고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A씨처럼 새로 산 땅이 또 수용돼 이중의 피해를 보는 시민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줄 수 있는지도 살펴보겠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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