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9일 자금출처 조사와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강남지역 집값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이 나오자 마자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이 1000만~2000만원 하락했고 거래도 동결(凍結)된 상태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부동산 투기세력을 차단,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근본 원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교육여건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토연구원 박헌주 박사는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지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은 언제든지 다시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재건축 규제 강화는 공급감소 부작용 초래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를 강남 집값 급등의 진원지로 보고 안전진단 강화, 사업승인 전 시공사 선정 금지를 골자로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사업승인도 받기 전에 시공사를 선정한 서울시내 120여개 단지가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재건축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은 빨라야 내년 상반기에 도입된다. 또 잠실·청담 등 5개 저밀도 지역이나 사업승인을 받은 재건축 단지는 규제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을 추진중인 상당수 아파트는 도시정비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 안전진단과 조합 설립을 앞당길 계획이다.
‘내집마련 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당장은 투자심리가 냉각되겠지만 강남에 대한 수요가 꾸준한 만큼, 투자자금이 규제를 받지 않는 저밀도 단지나 이미 사업승인을 받은 아파트로 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군다나 강남지역에서 재건축이 유일한 신규 아파트 ‘공급기지’라는 점에서 ‘재건축 규제강화 신규 아파트 공급 감소 새 아파트 가격 상승’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장기적으로 강남에 대한 선호도가 줄지 않는다면 강남지역의 아파트 공급 자체를 감소시켜 전반적인 강남 집값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 강남은 학원·학군뿐 아니라 편의시설도 뛰어나
강남지역의 첫번째 인기비결은 학원과 학군 같은 교육여건에 있다. 서울 쌍문동 35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기업 차장 이모(41)씨는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갈 장남을 위해 이 아파트를 팔고 유명 학원들이 들어서 있는 강남 대치동이나 도곡동에 전셋집을 얻기로 했다. 이 차장은 “아이의 평생이 걸린 문제인데 부모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6년 정도 투자를 못해주느냐는 아내 이야기에 결국 강남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제 건설산업연구원이 강남 거주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5.9%가 교육여건 때문에 이사를 왔다고 답할 정도이다. 교육여건과 관련, 재경부와 건교부가 과학고·외국어고와 같은 특수목적고를 강북과 수도권에 다수 설치, 교육수요를 분산하는 방안을 추진중이이다.
교육부가 이 안에 대해 반대하는데다 전문가들은 현실을 잘 모르는 대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부동산 114’ 김희선 상무는 “강남에는 특수목적고 진학을 전문으로 하는 유명학원이 많기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많다”며 “다른 지역에 특목고를 늘린다고 해서 강남 인기가 줄어들기 힘들다”고 말했다. 강북이나 수도권에 특수 목적고를 설치하기보다는 학원에 의존하는 교육제도 자체를 바꿔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강남의 인기는 단지 교육측면 뿐만은 아니다. 설문조사에서 생활편의시설이 좋아 강남을 선택했다는 응답도 20.9%로 수도권 평균(6.2%)을 압도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원은 “자녀 교육이 끝난 노년층도 생활편의시설이나 어느 지역에 살고 있다는 자존심 때문에 강남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며 “강남의 인기는 사회 문화적인데도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을 하다가 은퇴한 곽태영(61)씨는 “공기 좋은 곳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강남을 떠나 신도시로 이사를 하자 친구들마다 ‘혹시 사업에 실패한 것 아니냐’고 물어와 당혹스럽다”며 “강남을 떠난다는 것이 마치 신분이 낮아지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 강남의 대체 주거지역 건설 어떻게 풀 것인가
강남 인기의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강북에 대해 획기적으로 투자를 늘리거나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신도시를 개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국토연구원 박헌주 박사는 “선진국에서도 이른바 명문·고급 주거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높다”며 “한국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 주거지가 서울 강남밖에 없고 모든 중산층이 강남에 살기 원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 강남과 인접한 판교를 신도시로 개발중이다. 하지만 판교는 입주 가구수가 1만 9000여가구에 불과, 강남을 대체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적고 입주 시점도 2009년으로 늦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판교 인근에 있는 성남 서울공항을 개발하는 안도 건교부는 검토중이다.
서울공항은 강남과 인접해 있는 데다 지하철·도로망도 이미 갖추고 있어 단기간에 개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방부는 대체이전할 만한 공항이 없다는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설송웅 의원은 “서울공항과 주변의 그린벨트 등 전체 500만평 정도를 신도시로 개발하면 강남으로 집중된 주택수요를 적절하게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16만 가구 정도를 분양하면 15조원이 넘는 개발이익이 발생, 군공항 이전 비용은 물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투자재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