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위쿠데타 사주설 ##.
박정희 의장 일행은 박창규울릉군수(뒤에 대구시장)관사에 묵고 동아
일보 이만섭기자는 대륜중학교 후배 집에서 잤다. 다음날 박의장 일행은
시찰을 마치고 해변가 다방에서 국수를 시켜 점심으로 때우고 있었다.그
다방으로 이만섭이 들어왔다. 박정희는 이만섭 기자를 불러 옆자리에 앉
힌뒤 국수를 같이 먹자고 했다. 박정희는 국수를 먹으면서 말했다.
사진설명 :
박정희로부터 친위쿠데타 주문을 받았다는 최주종 8사단장.
"어제는 내가 좀 심하게 이야기한 것 같아 미안하오."
"뭘요. 그럴 수도 있지요".
이만섭은 무섭고 차가운 인상의 권력자 입에서 나온 너무나 겸손하고
솔직한 이 말에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녹아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 한다.
이날 박정희는 위험한 고비를 두번 넘겼다. 도동 항구에서 작은 경비
정을 타고 먼 바다에 떠 있는 본선으로 떠나려고 할 때 풍랑이 심했다.
경비정은 흔들리다가 전복될 뻔했다. 위기를 감지한 이맹기해군참모총장
이 "바다로 뛰어내리자"고 했다. 그때 풍랑은 더욱 거세어져배를 해안에
서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전송나왔던 도민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밧줄을
던져 겨우 경비정을 해안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해안 가까이 갔을 때
박 의장을 비롯한 승선자들이 한 사람씩 바다로 첨벙 첨벙 뛰어내렸다.
다행히 수심은 사람의 키를 넘지 않았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박 의장
일행은 산을 넘어 건너편 학동항구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쪽바다가 조용
하다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이만섭 기자의 손을 당겨 함께 걸으면서 어
민들의 애환과 농촌의 피폐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뚝뚝한
박의장이 너무 인간적으로 따뜻한 이야기를 하니 이기자로서도 딱딱한
정치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학동 항구에서 경비정을 타고 본선에 다다랐을 때 또 다시 풍랑이 거
세게 일었다. 박 의장은 밧줄로 묶어만든 줄사다리를 타고 본선에 오르
는데 파도가 덮쳤다. 박 의장은 비틀거렸고 하마터면 미친 듯이 출렁이
는 바다속으로 떨어질 뻔했다. 이만섭은 "만약 그 자리에서 박 의장의
신변에 어떤 일이 발생했더라면 이 나라의 운명도 그날의 파도만큼이나
심하게 바뀌었을것"이라고 추억하고 있다. 박의장은 "이래서 국가 원수
가 한번도 울릉도를 방문한 적이 없는 모양이야"라고 말했다. 이만섭 기
자는 박의장 일행이 모두 기진맥진해 있어 단독 인터뷰를 갖지 못했다.
의장과의 인터뷰는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특별기동차안에서 이루어
졌다.
10월12일자 동아일보 조간 1면 머리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박정희
는 구정치인과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 의장은 "혁명 후 1년 반이
지났으나 구정치인중 한 사람도 과거를 반성하는 사람이 없고 그 대부분
은 정부를 헐뜯는 짓을 일삼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구정치인들이 지금
도 다방같은 데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고 그것을 법으로 다스
릴수도 있으나 그들이 반성하기를 좀더 두고 본다"고 했으며 "우리나라
언론이 아직도 부정확하고 무책임하며 국가의 이익을 무시하는 과거의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 의장은 또 "정치정화
법으로 정치활동이 묶여 있는 구정치인들을 선별적으로 구제할 계획이
없고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계엄령을 해제할 생각도 없다"
고 강경하게 말했다.
이즈음 박정희의 머리를 지배한 주제는 민정이양을 이용한 집권연장
이었다. 박정희 의장은 5·16 전야, 신당동 자택에서 혁명공약 문안을
검토할 때 김종필이 써온 초안에다가 제6항을 덧붙였다. '이와 같은 우
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
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항목에 김종필은 반
대했다. 박정희는 군부가 국정에 개입했다가 복귀한 뒤에도 계속해서 현
실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터키나 버마식 통치를 구상하고 있었다. 직
접 국가를 운영해보면서, 그리고 권력에 대한 한국인의 본성을 체험하면
서 박정희는 정권을 일단 이양하면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
다는 것을 절감했다.
군부내 민정참여파과 반대파의 갈등은 김종필파와 반김파, 함경도 인
맥과 경상도 인맥의 불화와 겹쳐 극심한 내부 분열현상을 보여주었다.박
정희는 어떻게 하면 민정참여 지지쪽으로 군부를 몰아갈 것인가로 고민
하면서 동시에 엄청난 음모를 구상했다는 증언이 있다.
최주종은 5·16때는 광주 31사단장으로서 혁명주체세력의 일원이었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에서 박정희보다 1년 늦게 공부했던 그는 강직
하고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해서 박정희와 매우 친했다. 집안끼리도 교유
가 잦았다. 다섯 살 위인 박정희를 형님처럼 모시고 있던 최주종은 혁명
직후 의정부 8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최주종은 수도권을 방어하는 핵심
사단장으로서 침대 밑에 권총을 두고 자기도 했다. 최고위원을 겸하고
있었던 그는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사단 운영에만 전념했다. 그의
참모장이었던 이가 백행걸대령이었다. 준장으로 예편한 뒤 무역전시관
(KOEX)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백행걸은 최근 펴낸 회고록 '미완성의
성취'에서 이런 비화를 소개했다.
'계속'.
(* 조갑제 출판국부국장 *)
(* 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