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역사를 통해 공간에 대해서는 한없는 정복욕을 과시했으면서
도 시간에 관한 한 회피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한 예를 들어 우리가 잘
못 사용하는 이야기가 있다. 교통수단의 발전이 시간의 단축, 시간을 정
복했다고 하는데 실은 공간을 정복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시간 단축은
시간의 정복이 아니라 시간의 회피이다. 기차에서 12시간 앉아있는 것보
다는 4시간 앉아있는 것이 시간과의 정면 대결을 짧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기자의 생각은 아니다.
독일의 교육학자 칼하인츠 가이슬러의 '시간'(박계수 옮김 석필 간)을
읽고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말쯤은 할 수 있게 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
면 '느림의 미학'을 에세이 형태로 풀어낸 것인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속
도인으로서의 현대인에게 딴지를 걸어온다. 가이슬러가 가장 싫어할 책
은 분명 '시간경영'이니 '초관리'니 하는 제목이 붙은 책일 것이다.
그가 가는 방향은 정반대다. 밀란 쿤데라식의 느림쪽이다. 기다림 휴
식 멈춤은 물론이고 러셀처럼 게으름까지 찬양한다. 사실 그래야 할는지
모른다. 사는 것처럼 살려면 말이다. 책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저자
의 방대한 인용이다. 2천년 전의 격언부터 시작해 문학 철학에 나오는
흥미로운 구절, 심지어 신문기사까지 끌어댄다. 1995년 7월 26일자 쥐트
도이치 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옷 갈아입는 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 장 들뤼모, 장 클로드 카리에르, 스티븐 제이 굴드 등
서양의 대석학들이 대담자로 참가한 '시간의 종말'(문지영· 박재환 옮
김끌리오 간)은 문명사적인 시각에서 본 서로 다른 시간론이다. 초점은
세번쩌 밀레니엄의 도래에 모아진다.
기호학자 에코의 말부터 들어본다. "사람들이 세번째 천년의 도래에
불안해 한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언론만이 강박 관념을
조장하려고 열중할 뿐이죠. 밀레니엄과 관련해 사람들이 하는 걱정이란
밀레니엄버그와 사모아섬의 호텔 예약뿐입니다." 2000년대라고 해서 전
혀 특별할 게없다는 말이다.
미국 하버드대 고생물학자 굴드도 에코에 가깝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에 대해 "대단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 새로운 천년의
첫날 한바탕 축제를 벌이다가 인파로 인해 몇 사람이 깔려 죽거나 술 때
문에 사소한 불상사가 생길 수는 있겠지요." 고생물학자답게 그는 "하루
가 1천년같고 1천년이 하루와 같다"며 꼭 성철 스님같은 말도 하고 있다.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의 역사학교수 들뤼모는 서구인들의 시간관의
바탕이 되는 성서적 시간관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2000년이란 해는 비
그리스도 교도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상대적인 것이지요.".
프랑스의 동양학자 카리에르는 그나마 동양적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한다.
"인류의 멸망이 올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세상의 종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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