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국책사업점검] `꿈의 열차' 경부고속철도는 밑빠진 독

뉴스
입력 1998.04.01 16:13





"부산까지 가지도 못하는 경부 고속철도라면 만들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감사원이 정책결정 기관인가." 지난 3월21일 감사원이 "경부 고속
철도는 문제 투성이여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
힌 직후이정무 건설교통부장관이 보인 반응이다.

강행하자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고, 그만 두자니 그동안 들인 돈과
국제 신인도 하락이 겁나고…. 98년 2월말 현재 2조4천억원이 투입돼
16.3%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경부고속철도 사업이 또 탈선 위기를 맞
고 있다. 서울∼부산간을 1시간 56분에 달리겠다던 '꿈의 열차'는 레일
위에 설 수 있을까.

감사원의 '전면 재검토' 발표로 사업 강행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
을 다시 불러 일으켰던 경부고속철 사업은 현재로선 '문제점을 파악해
공사를 계속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 같다.

한승헌 감사원장서리는 3월21일 "고속철은 사업계획의 졸속 수립, 무
모한 사업 추진으로 파행 상태"라며 "경제성과 재원 조달, 누증 부채 해
소면에서 사업의 장래성이 없으므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혹독한 비
판이 담긴 고속철 특감 중간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말이 좋아 재
검토일뿐, 사실상 사업을 백지화하자는 주장이었다.


● "수렁에 더 빠지기 전에 그만 두자"
감사원의 발표로 사업 강행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일자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은 서둘러 "정부는 고속철 중단 방침을 세우지 않았으며
순조로운 공사를 위해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을 알아보는 단계"라고 진
화에 나섰다.

박 대변인은 "경부고속철도 사업은 새 정부가 책임지고 어떤 문제점
이 있으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철저히 조사하자는 것이 김 대통령
의 뜻"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 대변인은 조사 후 중단 가능성에 대
해 "현 단계에서 계속 진행이냐 중단이냐를 양자 택일식으로 말하는 것
은 적절치 않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몇몇 전문가들은 여전히 "더 큰 수렁에 빠지기 전에 그만 두고 그 돈
을 다른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으로 돌리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
다. 정치권에서도 국민회의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단 의견이 일고
있다고 들린다. 몇 차례에 걸쳐 고속철 사업에 대한 특별 감사를 벌여온
감사원의 목소리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감사원 측은 건교부와 고속철 공단이 지난해 수정 발표한 사업비 17
조5천억원에는 차량 추가 구입 및 추가 건설비 등이 빠져 있으며 이를
포함할 경우 최소 4조5천8백72억원이 더 필요하지만, 앞으로 실제 얼마
나 더 들어야 할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감사원은 "사업비가 당초 5조8천5백24억원에서 93년에 10조7천4백억
원으로, 지난해엔 17조6천2백94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이마저
타당성이 없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공단이 지난해 발표한 사업비는 물
론 애초 사업을 시작할 때 경제성을 지나치게 높게 나오도록 조작했다는
의혹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감사원은 고속철이 하루 승객 20만명을 예상하고 채산성을 계산하고
있지만 기존 경부선의 승객수가 92년 22만명을 정점으로 계속 줄고 있어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요금도 항공요금의 70% 정도
로 책정,㎞당 63원으로 개통 초기 연간 2조원의 수입을 예상하고 있지만
공단 운영비와 20조원 가량의 사업비에 대한 이자 충당도 역부족이란 계
산이다.


● 건교부 "건설비 20조 이하 땐 경제성 있다"
그러나 건설을 책임 지고 있는 건설교통부와 고속철도공단은 "공사 중
단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건교부는 "건설비가
20조원 이하일 때는 충분히 경제성이 있다"며 "사업 내용을 다소 보완하
더라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덧붙여 들어간 돈도 돈이지만
2천년대 원활한 물류 수송을 위해서라도 고속철 공사는 결코 중단될수 없
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건교부는 서울∼부산간 경부축은 전체 여객 수송의 66%, 화물의 70%를
담당하고 있어 2000년에는 물류난에 허덕이게 된다며 '고속철 불가피론'
을 강조하고 있다. 고속철은 여객 수송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물류 수송을
위해 건설하는 것이라며 고속철이 완공될 경우 물류 수송은 7.7배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건교부 실무자들은 만성 적자 운행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작년 수
정 발표 때 경제성을 최대한 '짜게' 분석했다"며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
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서는 "1차 사업을 끝내고 그
후수십년간 고속철을 운행하다 보면 새 열차도 사야 하고, 2단계 사업으
로 추진 중인 서울역∼남서울역 지하화 사업비용도 들어간다. 그걸 고의
적으로 누락했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며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이
고 있다.

이정무 건교부장관은 감사원 발표 직후 국회에서 "주무 부처인 건교부
가 대통령에게 사업 보고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 전면 재검토라는 말을 감
사원에서 할 수 있느냐"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장관은 "대구
이남 구간의 유보 문제는 주무부처인 건교부와 고속철 공단, 믿을 만한
제3의 기관이 함께 재검토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경부고속철 사업을 중단할 경우 후유증도 심각하다. 이미 투입된 엄청
난 재원의 손실과 대외신인도 하락 등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우
려된다. 우선 이미 지출된 사업비 2조3천9백99억원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8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도입한 차관 8억4천만달러도 당장 갚
아야한다.

고속철 주 계약사인 알스톰사와 유럽계 은행, 책임 감리를 맡은 미 벡
텔사 독일 DEC 프랑스 SEEE사 등에 물어야 할 위약금까지 더하면 액수는
훨씬 늘어난다. 고속철 사업에 직접 종사하는 노동력은 7천9백24명이지만
연간 1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관련업계의 고용창출 효과까지 고려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건교부는 이와 관련, 서울∼대구 구간(2백98.9㎞)은 예정대로 고속철
도로 건설하고 대구∼부산 구간은 기존 경부축을 전철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럴 경우 총사업비는 12조원 안팎으로 기존선 전철화 및 연결선
비용으로 8천3백억원 가량 들어가더라도 5조∼6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밖에 현재 지하 구간으로 건설 예정인 대전, 대구 도심 구간
을 지상화해 사업비를 1조2천억 정도 절감하는 방안도 마련되고 있다.


● 대부분 전문가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고속철 건설 여부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논쟁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장기적으로 남북 통일 및 대륙과의 교통 수송 연계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이미 많은 댓가를 치른 고속철 사업은 흔들
림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건설 주체인 고속철 공단의 관리
능력을 대폭 강화하고 지하 구간 등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재검
토 작업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경부고속철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감사원은 4월8일 감
사위원회를 열어 마지막으로 입장을 조율한 뒤 총리실을 포함한 유관부처
설명회를 갖고 10일쯤 최종 감사결과를 발표한다. 경부고속철 사업의 운
명은 그 때쯤이면 판가름날 것 같다.

(최장원 사회부기자).

----------------
테제베 쪽
고속철, 4월20일쯤 마산항서 첫선
달릴 '길'없어 1년간 고철(고 ) 신세될 듯
사업 축소→강행→포기 등 다시 논란이 일고 있는 와중에도 고속열차
(테제베)는 이미 출발역을 떠나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3월25일 고속열차
1편성(20량)은 프랑스 라 팔리스 항구에서 한국행 아시안 코러스호에 옮
겨졌다.

이 고속열차는 4월20일쯤 마산항을 통해 국내에 도착하게 된다.

이 열차는 경부고속철도에 46편성(9백20량)의 고속열차를 공급키로 한
한국·테제베 컨소시엄이 작년 7월 프랑스 현지에서 제작한 시제차 2편성
중 제2호차. 이 차량은 현대정공 창원공장에서 재조립한 뒤 내년 1월 고
속철공단이 넘겨받아 경기도 양평 부근 중앙선 국수역에서 시험 가동해
기관사, 정비요원 교육에 쓰이게 된다. 1호차는 프랑스 현지에서 시험 운
행을 마치고 오는 12월쯤 들여올 예정이다.

그러나 고속열차는 달릴 '길'이 없다. 당분간 시험 운행도 못한 채 1년
가까이 고속철이 아니라 고철 신세를 면치 못할 운명이다. 지난해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사업기간을 전면 재조정하면서 시험운행이 이루어질 시험선
청원∼오송간 16㎞ 구간의 개통이 99년 말로 연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공단측은 "이번에 도입하는 차량은 시험선 구간 개통 때까
지 국수역에서 시속 20∼30㎞로 운행하면서 보관되기 때문에 성능 유지에
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화제의 뉴스

기업 키워준 '광주' 떠나는 중흥건설…본사는 남기고, 핵심은 서울로
[단독] '잠실르엘'에서 10가구, 5억 로또 아파트로 나왔다
[단독]'국내 1호 CGV' 테크노마트점 530억원에 매물로…임차기간 11년 남아
7호선 연장 공사 때문에?…인천 아파트서 바닥재 내려앉고 균열
화재 사고 '반얀트리 부산' 새 시공사로 쌍용건설…1000억원대 자금 수혈

오늘의 땅집GO

[단독] '잠실르엘'에서 10가구, 5억 로또 아파트로 나왔다
"1년 새 9억 쑥" 재건축 환급금만 3억, 강남 변방 '이 동네'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