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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 "대쪽 같은 판사라고 생활고 해결되나"

뉴스
입력 1998.04.01 16:12



## 옷벗는 법관 올들어 급증 추세…주로 30대 무더기 사표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는 요즘 사임 인사를 하러오는 판사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곧 있게 될 정기인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표를 내고 변호사의 길로 나서는 판사들이 인연 있는 대법관들을 찾
아 인사를 하는 것이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예전에는 어려운 사정이 있어도 꿋꿋이 판사
의 길을 걸었다"면서 "젊은 판사들이 자꾸 옷을 벗어서 큰 일"이라는
우려의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 들어 3월말까지 이미 사표가 수리된 판사
는 모두28명.현재 사표를 제출해 놓고 있는 판사들의 수도 4∼5명에 이
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수는 3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97년
같은 기간에 옷을 벗은 판사가 23명, 96년 동 기간에 그 수가 10명대였
던 데 비하면 그 숫자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4월 중에는 의정부 지원 판사 비리 사건 징계 절차가 마무
리돼, 이 사건과 관련해 사표를 내는 판사들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올해 전반기에만 40명 이상의 판사들이 법원 문을 나설 것
으로 대법원은 예상하고 있다. 97년 한 해 사직한 판사 수 65명의 절반
이상이 상반기 몇 달동안 법복을 벗는 것이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증가 추세에 대해 "특별한 원인은 없
으며 대부분 개인 사정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의정부사건등 판사 권위 추락도 한 원인".

하지만 서초동 변호사 업계에서는 "의정부 지원 사건 등으로 떨어
진 판사의 위상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법
연수원의 한교수는 "솔직히 말해 판사들을 이 사회의 '최고 엘리트'로
생각해주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면서 "요즘처럼 판사의 위상이 계속
추락해간다면 사명감 하나로 버틸 판사들이 점점 적어질 것"이라고 말
했다. 그는 또 "외부에서 어떻게 볼 지 모르지만 판사는 법조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박봉에다 격무에 시달린다"면서 "올해 초도 그랬지만 또 한
차례 인사가 있는 8∼9월과 내년에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사표를 낸 판사들의 특징은 젊은 판사들이 눈에 띄게 많다는
점이다. 사표가 수리된 28명 중 부장판사 이상은 모두 11명인 반면, 평
판사들이 17명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판사 경력이 10년 이하이거
나 나이가 30대인 젊은 판사들이 13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수원·인천지법의 경우 사표를 내고 개업한 판사 8명 중 7명
이 30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대부분 사시 26회에서 사시 30회로
88년∼92년에 임관한 판사들이다.

젊은 판사들의 사직이 느는 데는 대법관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사명
감이 약화된 탓도 있다. '판사'라는 공직에 주어지는 권위가 이미 상당
부분 퇴색했고 이 때문에 '판사'가 굳이 지켜야 할 공직이라는 의식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다. 의정부지원 사건으로 이같은 추세는 더욱 심
해질조짐이다.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판사는 "업무차 재
경부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요즘 사법시험이나 행정시험이나 다를 게
없다' '판사들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될 이유가 없다'는 등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법원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 승진이 보장돼 있는 판사들의 사직이
많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보장받고 있었던 최정수 전 성남지원장(48·사시 16회)은 개인
사정이 따로 있었지만 로펌 등에 발탁된 판사들 중에는 연수원 성적 우
수자가 상당수 포함됐다. 법원의 서열식 인사 관행 덕분에 이들은 큰
문제만 없다면 대부분 고등법원 부장판사까지 자동 승진할 수 있는 법
관들이다.

갈수록 악화돼가는 변호사 업계의 환경도 '법관 사직' 바람을 부추
기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로펌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어차피 변호
사로 나서야 한다면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나가서 자리를 잡겠다는
심리가 반영된것 아니겠느냐"고 최근 '법관 사직 바람'을 풀이했다. 실
제로 사법시험 합격자 5백명 시대를 열었던 사법시험 38회 출신들이 99
년초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 내부의 인사 적체를 지적하는 판사들도 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이번에 사표를 낸 사람들 중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은 단 1명
에 불과하다"면서 "판사들의 인사 적체가 심각해 '박봉'을 견디게 할
메리트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표를 낸 판사들의 진로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독
립사무실을 차리는 경우보다는 로펌이나 합동법률사무소로 나가는 경우
가 더많다. 법원 내부에서는 "과거와 같은 전관예우 관행이 거의 없어
진 데다 서초동에서 개업하기 위해 필요한 2억∼3억원 가량의 개업 비
용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 독립개업보다 위험 피해 로펌으로.

특히 서울지역에서 사표를 낸 판사 15명 가운데 로펌 등으로 빠져
나간 판사들은 확인된 사람만 9명에 이른다. 최정수 전 성남지원장, 30
대 초반의 젊은 판사로 서울지법에서 근무하던 김진욱(32·사시 31회)
박영훈(32·사시 34회) 판사가 국내 대표적인 로펌인 '김&장'으로 발길
을 돌렸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던 사시 23회의 여상훈 판사와 강신
섭판사는 각각 로펌 '율촌'과 열린합동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
두판사는 부장판사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중견 법관들인 강훈(44·사시 24회·서울고법 판사) 김재호(36·사
시 26회·서울가정지법 단독판사) 홍지욱(36·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
판사등도 지난 2월말 김찬진 변호사가 운영하는 바른법률사무소로 들어
갔다. 3월초에는 부부판사로 유명한 서울가정법원의 최혜리 판사(33·
여·사시 33회)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최유식 주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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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 떠나는 이유
가족 질병, 지방 근무,승진 누락…
"전문 변호사 길 걷겠다" 소신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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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사표를 내고 법원을 떠나는 판사 중에는 가족들의 질병이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정수 전 성남지원장은 부인(47)이 '청각신경초종양'이라는 난치병에
걸려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적잖은 빚을 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재
판연구관으로 근무했던 강신섭 변호사는 난치병으로 수년째 고생하는 큰
딸(12)때문에, 같이 근무했던 여상훈 변호사는 양친과 장인 어른이 병석
에 있는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방 근무가 원인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최혜리 판사는 지방근무 문
제로 고민하다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남편이 수원지법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최 판사는 오는 정기 인사에서 지방으로 발령이 날 예정
이었다고 한다. 바른법률사무소로 들어간 강훈 서울고법 판사도 "갑상선
암으로 투병 중인 칠순의 홀어머니를 두고 지방근무를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장판사 이상 급에서는 주로 고법 부장판사 승진 누락으로 후진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사표를 낸 경우가 다수이다.

서울지법 형사 항소 2부 판사로 있다 '김&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진
욱 판사처럼 "판사보다는 국제 전문변호사로서 길을 걷겠다"고 아예 인
생진로를 고쳐잡은 소신파들도 있었다.

하지만 판사들이 옷을 벗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생활고' 때문.판사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이 필요하거나, 만만찮은 가계 빚에
IMF로 천정부지로 치솟은 금리를 못 견디고 옷을 벗은 판사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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