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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레이더] 제일종금-신한은행 `집안싸움' 가열

뉴스
입력 1998.04.01 16:12




## 대주주 증자외면에 "병든 자식 죽일 수 있나" 반발 ##.

"병상에 누워 있는 자식을 죽이는 아버지도 있습니까.".

지난 3월26일 오전 명동 제일종합금융 노조사무실.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둘러앉아 뭔가를 숙의하고 있었다. 앞 가슴에는 '수호! 생존권'
'박살! 병아리 은행'이라고 적힌 리본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지난 2월말 종금사 경영평가위원회로부터 '정상화 가능' 판정을 받았
던 제일종금 직원들은 곧 실직자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 있다. 재정경제
부로부터 3월말까지 1천2백억원의 증자를 실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증자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주주인 신한은행을 비롯한 주주들이 증자
참여를 거부한 것이다. 이에 따라 3월23일부터 영업정지에 들어간 제일
종금은 '업계 2위, 8조원 자산의 종금사도 망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기
고 곧 간판을 내릴운명이다.

하지만 제일종금 직원들은 이러한 운명에 저항하고 있다. "모기업과
다름없는 신한은행이 우리의 자구 노력을 외면한 채 증자 약속을 어겼다"
며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이 전직원의 고용 승
계를 보장하지 않을 경우 "신한은행의 비도덕성에 대한 폭로전과 거리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주주인 신한은행측은 증자 포
기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며 제일종금 직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는 태도여서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일종금뿐 아니라 종금업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곳곳에서 치열
하다. 문을 닫은 종금사 직원들은 개인 파산을 면하기 위해 최후의 저항
을 벌이고 있고, 살아남은 종금사들은 생존 자금을 구하느라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폐쇄 명령에서 벗어난 종금사들은 최근 제일종금
을 제외하곤 일단 1차 증자에는 성공했지만 앞으로도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야 할 형편이어서 갈 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이번에 제일종금의 증자 참여를 거부한 신한은행의 결정은 사실 주변
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부실 덩어리
종금사를 끌어안으려 했던 여타 종금사들의 대주주와는 다른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제일종금 직원들은 신한은행이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증자에 참여해 회사를 살리기로 약속해 놓고 이를 외
면했다는 것. "신한은행측은 경영평가위원회와 지난 1월23일 열린 연석
이사회에서 분명히 증자 참가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아무런 적극
적인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제일종금 비상대책위원회 김민석 위원장은 "신한은행과 제일종금의 실
질적인 주인인 재일교포 주주들도 제일종금을 살리자는 의견이 많았다"
며 "대주주인 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증자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
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종금에 대한 신한은행의 지분은 7.28%. 하지만 신한은행을 소유하
고 있는 재일교포 주주들의 별도 지분까지 합하면 60%가 넘는다는 게 제
일종금측의 설명이다. 결국 양 회사는 서로 '한 식구'나 다름없는 셈이
다. 신한은행은 지난 77년 재일교포들이 설립한 제일종금을 모태로 82
년 출발했고, 현재 제일종금의 대표이사도 신한은행 이희건 회장이 맡고
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제일종금측의 이러한 '대주주 의무론'에 대해 반박
하고 있다. 자신들이 증자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7.28%의 지
분에 한해서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고 다른 주주들이 증자 참여를 포기
할 경우 그 부담을 떠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측은 "액면가를 밑도는 주가 때문에 지난 3월18, 19일 신주
청약에서 실권율이 99.97%나 됐다"며 "우리가 나머지 부담을 다 떠안아
주주들한테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한은행측은 이번 증자 말고도 제일종금 정상화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년까지 2천1백억원의 추가 증자와 9백억원의 후순위채 발행
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무리해서 돈을 쏟아 붓다가는 은행까지 위험
해질 우려가 있었다"며 "우리는 시장 논리에 충실했고 당면 과제인 금융
권의 구조 조정을 위해서도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은행쪽의 '현실론'에 대해 제일종금 직원들은 "자기 합
리화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권주 발생에 대비해 제일종금측이
이미 자구책 차원에서 여신 기업들에 호소해 9백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두었고, 직원들의 봉급과 복리 후생비를 깎아 10억원의 비상 자금도 비
축해 두었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이 자신의 의무만 다했어도 실권주를 해
결하며 정상화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우리 부실 채권의 80%가 기아와 한라그룹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데 한라에 해외자금이 유입되고 기아의 공개 매각이 거론되는 등 해결
방안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 그룹의 부실 채권만 해소되면 추가
증자는 아예 필요가 없게 됩니다." 제일종금 비대위 김민석 위원장의 항
변이다.

하지만 신한은행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호
소인지 협박인지 모르겠지만 여신 기업들에게 일시적으로 자금을 빌려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양측의 설전에 대해 경영평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제일종금
은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긴 했지만 회생 가능성은 극히 불투명
했다"며 "대량 실권 발생이 확실해 신한 금융 그룹을 대신할 대주주를
찾지 못하면 정상화가 힘들다는 게 우리의 단서 조항이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폐쇄명령을 받은 12개 종금사 직원들도 그동안 대출금 탕감과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대주주나 청산인들과 협상을 벌여 왔다. 이중 고
용승계부문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마무리되어 가는 단계. 퇴직 희망자를
제외한 인원들은 대주주의 그룹사나 청산 재단, 가교 종금사 등으로 빠
져나가고 있다.

문제는 대출금 부분. 대부분의 종금사 직원들은 잘 나가던 시절 회사
에서 대출금을 받아 우리 사주를 샀고, 주택자금도 당겨썼다. 하지만 회
사가 망하자 이러한 대출금을 당장 갚아야 할 입장에 몰리고 있는 것.퇴
직금을 다 주고도 돈을 더 물어야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형편이다.

이미 인가 취소돼 청산 절차를 밟고 있는 삼삼종금의 한 관계자는 "개
인 파산을 면하기 위해 마지막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하지만 대출금을
2년간 유예해주겠다는 게 청산인측의 최선의 답변"이라며 허탈해 했다.

● 종금업계, 살아남기 경쟁 치열.

앞으로 종금업계의 가장 큰 과제는 '살아남은 자'들의 정상화 여부.

폐쇄조치를 면한 17개 종금사가 내년 6월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의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려면 모두 3조3천1백65억원을 쏟
아부어야 한다. 1개사당 평균 2천억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재무구조개선
계획이다.

그동안 밝혀진 개별사의 계획을 보더라도 LG종금(5천4백억원) 대한종
금(4천7백억원) 제일종금(3천9백억원) 중앙종금(3천6백50억원) 한길종금
(2천억원) 등 엄청난 액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종금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최근 증자를
하며 정상화 길에 돌입했다. 나라종금이 3월 중순 6백60억원의 유상 증
자를 끝마친 데 이어 대한종금(1천7백70억원) LG종금(5천4백억원) 중앙
종금(7백억원) 한길종금(1천2백억원) 울산종금(1백50억원) 금호종금(1백
억원) 등 막대한 자금이 종금업계에 쏟아부어졌다.

특히 계열사의 자금을 동원한 LG종금 같은 경우는 이번에 거금을 쏟아
부으며 BIS 자기자본 비율을 1%대에서 11%대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LG종
금을 상업은행 또는 투자은행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을 밀고 나가겠다
는 입장이다.

문제는 추가로 자금이 필요한 종금사들의 경우. 상당수 종금사들이
6월말까지 2차 증자를 해야 할 입장이지만 벌써 증자 과정에서 종금사
대주주들의 '무리수'가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종금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종금사에 목을 맨 일부 대주주들
이 여신 기업들의 어음을 하루씩 연장해주며 '다 같이 죽을 수 있느냐'
는 협박으로 강제로 증자에 참여시켰다"며 "앞으로 증자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장열 주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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