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Living] IMF체제 남편…아내 위로가 기 살린다

뉴스
입력 1998.01.05 19:37






부산 사는 주부 C(39)씨가 남편 회사 부도 소식을 접한 건 97년 봄
이었다. 채권자라며 남편 찾는 전화가 잦아지면서 어느날 남편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대기업에 선박부품을 대다가 일반기계 쪽으로 사업을 확
장하면서 위기가 닥쳤다고 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부도 액수가 8억원
가까웠다.

C씨는 그제서야 남편이 지난 1년 일찍 들어오고, 휴일이 많았던 이
유를 짐작했다. 그래도 C씨는 실감나지 않았다. 남의 일만 같았다. 하
지만 새벽에도 걸려오는 빚독촉 전화가 현실을 깨닫게 했다. 딸아이가
들을까, 어머니 잠 깰까, 전전긍긍하면서 하룻밤을 넘기기가 힘겨웠다.

밤 9시쯤부터 전화선을 뽑아놓기도 했다. 결국 공장과 땅을 정리
하고 아파트 한채만 간신히 남겼다. 집안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남편
은 종일 신문과 TV를 끼고 살았다.깐깐하던 성격도 묵묵하고 무던하게 바
뀌어갔다. 만나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즐기던 술도 자연히 줄었다.

C씨가 "힘 좀 내보라"고 하면, "괜찮다"며 웃고 말았다. 남편을 위
해 C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않았다. C씨는 식단부터 바꿔봤다.남
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생선을 자주 올렸다. 남편 혼자 먹는 점심에도
한번도 쓰지않던 예쁜 그릇에 밥을 담았다.

밝은 색 티셔츠도 일부러 샀다. 전에 없던 애교도 부렸다.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고, 남편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맥주상도 준비했다.

하지만 남편은 "괜히 그럴 필요 없다"며 C씨를 토닥일 뿐이었다.C씨
는 "젊을 때 이런 일 당한 걸 위안으로 삼아요. 좋은 경험으로 알고 살면
되잖아요"라고 위로했다.

집안 씀씀이는 절반으로 줄었다. 철마다 바꾸던 딸아이 바지는 1년
내내 한 벌도 사지 않았다. 대신 키가 자란만큼 밑단을 내렸다. 친구집과
헌 옷을 바꿔 입히기도 했다. 과외는 없애고 한달 2만원짜리 학습지로 대
신했다. 택시도 거의 타지 않았다. 버스 정거장 두어개 되는 거리는 걸었
다. 싫어하던 등산에도 취미를 붙여 남편과 가끔씩동행했다.

97년 겨울 남편은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빚을 얻어 회사를 조금씩
되살렸다. 돈벌어 빚갚기 벅차지만, 남편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요
즘 C씨는 'IMF시대 나기'가 부담스럽지않다.

"아끼며 부지런하게 사는 게 이젠 몸에 뱄어요. 이렇게 살다보면
우리집도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가겠지요." '이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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