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진도와 방울이 .
## 61. 진도와 방울이 ##.
27일 오후 국군서울지구병원의 김병수 원장은 서빙고분실로부터
"급히 좀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김재규에게 몇 차례 가한 고문 때
문에 피하출혈이 생겨 멍이 들자 수사관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사진설명 :1976년 6월30일
박근영의 생일잔치에 동참한 '진도'가 고기를 얻어먹고 나자 대통령은
이쑤시개로 진도의 이빨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제거해 주고
있다.
김병수 준장이 서빙고의 신문실에 들어가니 김재규는 반가워했
다. 진찰해 보니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다. 으레 간이 나쁜 사람들이 보
이는 증상이었다. 김원장은 전두환 사령관에게 말해주었다.
"괜찮습니다. 하루에 알부민 한두대 정도 놓아주면 됩니다."
"어이, 김 장군. 당신이 책임져야 돼."
"괜찮아요. 안 죽어요.".
그해 여름 김 원장이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의 진찰을 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이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거, 말이야 김재규 부장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김 박
사가 잘 좀 치료해줘.".
김재규 부장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는 며칠 후 김 원장을 찾아왔
다. 김부장은 당시에 서울대학병원의 김정룡 교수로부터 간치료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굳이 김병수 원장에게 치료를 받도록
한것은 정보부장의 건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빙고 분실에서 김재규를 치료해준 뒤 김 원장은 통행금지령이 내
려진 늦가을 밤 스산한 시청 앞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시
청 현관위에 조명을 받은채 내걸린 대통령의 영정이 눈에 들어왔다. 서
거한지 만 하루밖에 되지 않은 박 대통령의 얼굴은 김병수 원장을 노려
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는 내 주치의였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날 죽인 자를 살리
려고 하나.".
김병수 원장은 이때 받은 자괴심으로 해서 "이제부터는 내가 직접
환자 치료하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날 국군서울지구병원에는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도 실려왔다. 간
밤에는 권총을 차고 대통령의 시신을 지키면서 김병수원장을 사실상 연
금하기도 했던 그는 서빙고에서 가혹한 신문을 받다가 고통을 참지 못
해 라디에이터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응급처치를
받고 누워 있던 그를, 합수부 수사관들이 오더니 수갑으로 머리를 내려
치고는 끌고 나갔다.
박대통령의 친척과 측근인사들은 지금도 김재규의 '배은망덕'을 말
할 때 '개보다 못한…'이란 표현을 쓴다. 인간을 차별하지 않았던 박정
희는 평소 개에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통령 시절에도 방
울이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으면 쫓아내지 않고 그 옆자리에 가 앉았
다. 더운 여름날 방울이가 혀를 빼물고 헐떡거리면 대통령은 자신이 부
치던 부채를 방울이에게 부쳐주기도 했다.
5·16전 박장군은 신당동에서 살 때 '와이마루너'라는 독일산 경기
견을 '와이마루'라 부르며 키웠다. 아내 육영수는 이 개가 새끼를 낳으
면 시장이나 축견사에 팔아 집수리 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금도 신당동 집에 남아 있는 벽돌담과 채양은 이 강아지 판매대
금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와이마루는 여섯 차례 가량 새끼를 낳았다
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9일장 기간에 청와대 본관 2층에 혼자 남은 방울이는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항상 쫄쫄 따라다니던 스피츠 수컷 방
울이는 대통령을 찾아 침실과 전실을 기웃거렸다. 나중에는 대통령의
슬리퍼가 놓여 있는 곳에서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2층 침실의 문만 열
리면 대통령이 나타난 줄 알고 꼬리치며 달려갔다가 이내 시무룩해져서
돌아오기도 했다.
방울이가 본관 2층의 주민이 되기 전에는 한 마리의 진돗개가 살고
있었다. 아내를 잃은 박 대통령은 허전한 공간을 메우기 위해서였던지
개를 키우려고 했다. 1975년 무렵 진도 군수가 상납한 것은 황구와 백
구라고 불린 진돗개 수컷 두 마리였다. 전석영 총무비서관과 박학봉 부
속실장이 두 마리의 진돗개를 목욕시킨 뒤에 2층 내실로 데리고 올라갔
다.대통령은 백구를 선택했다. 이름은 '진도'라고 붙였다. 탈락된 황구
는 경호경비대(경찰)에 보내져 경비견으로 쓰이다가 곧 병을 얻어 죽었
다. 박학봉 실장은 백구와 황구의 운명이 순간적인 선택에 의해서 갈리
는 것을 보고서 묘한 감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도는 주인한테만 충성을 바치는 진돗개의 성격 그대로였다. 야성
이 살아 있어 먹을 것을 주는 대통령을 할퀴기도 했다. 진도는 대통령
에게는 절대적으로 충성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사나웠다. 그래
서 박학봉은 이 흰둥이 진돗개를 '박진도'라고 놀리기도 했다. 전석영
비서관은 "각하가 아시면 어쩌려고…"라면서 눈총을 주기도 했다.
2층으로 올라가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달려드는 진도에 혼이 나서
박학봉에게 구원을 청한적도 있었다. 부속실 사람들에 대해서는 진도가
고분고분했다. 먹을 것들이 부속실을 통해서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
러나 부속실의 '미스 리'는 진도에 엉덩이를 물린 적도 있었다. 진도의
정위치는 대통령의 침실 앞 거실이었다. 의젓한 자세로 버티고 있는 진
도는 든든하게 보였다.
1978년 이 진도는 박 대통령의 사저인 신당동 집으로 하방되었다.
진도가 너무 사나워 청와대 본관 안에서 원성을 산 것도 한 원인이
었다. 진도는 신당동 집 관리인 박환영의 손에 넘어갔다. 여기서 진도
의 운명은 또 한번 바뀌어진다. 청와대본관 시절의 진도는 대통령의 위
광을 믿고 멋대로 싸돌아 다녔으나 신당동에서는 쇠사슬에 묶이는 신세
가 되었다. 워낙 사나워 밥을 주는 박환영만 물지 않았으니 격리조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도는 쇠사슬을 이빨로 빡빡 물어뜯기도 하는
등 저항도 해보았으나 때늦은 후회였다. 박 대통령이 가끔 신당동에 들
르는 날이 진도가 사슬로부터 해방되는 날이었다. 재회도 잠깐, 대통령
이 떠날 때면 진도는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꼬리를 흔들고 달려
가려고 했다. 울화통이 터진 생활 때문인지 진도는 신당동 집에서 1년
쯤 살다가 1979년 봄에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다. 박환영이 대통령
에게 보고했더니 "잘 묻어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박환영은 북한산의
양지바른 기슭에 진도를 묻고는 돌멩이로 표시를 해놓았다.
진도가 청와대에서 신당동 집으로 밀려나갈 무렵에 들어온 것이 방
울이었다. 박근혜가 이 방울이를 구해서 육발이 수술도 해주면서 귀여
워했다. 이 방울이는 박정희 유족이 청와대를 나올때 신당동 집으로 따
라갔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