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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생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22)

뉴스
입력 1997.11.10 18:58


## 미국대사와 정보부장의 밀담 ##.

미국정부가 박정희를 괴롭힌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제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당시 미국은 정보
기관의 횡포에 대한 의회의 조사가 진행되고 특히 외국의 국가원수들에
대한 암살음모가 폭로되고 있을 때였다.

사진설명:박정희는 김영삼을 미국의 비호를 받는 사대주의자라고 단정했다.
10월 26일 최후의 만찬자리에서도 대통령은 김 총재와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왼쪽)의 회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미국정부가 개입하여 박정희를
암살하도록 조종하기에는 가장 적절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박정희의 제
거는 한국의 정치불안을 부를 것이 분명한데 이는 미국의 국익에 반하
는 것이었다. 3년 전에 기자를 만난 글라이스틴(10·26사건 당시 미국
대사)은 박정희의 원폭개발 계획도 1979년 무렵에는 핵재처리시설 도입
의 포기로써 완전히 동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1979년에 김재규는 글라이스틴과 CIA서울지부장 로버트 브루스터를
특별히 자주 만났다. 미국측은 온건하고 충직한 김재규를 대화창구로
삼아 박정희 대통령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박정희의 인권탄압에 대한 미국측의 불만과 비
판을 둘러싼 것이었다. 이런 대화를 통해서 김재규 정보부장이 자극이
나 격려, 또는 암시를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김재규는 10·26사건 재판 뒤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이렇게 썼다.

'자주국방이 이상일는지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잠꼬대에 지나지 않
는다. 서독 같은 나라도 집단안보를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자주
국방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발상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할 수 없는 나라는 진정한 독립국가가 아니라
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유신정권의 수문장은 미국측 논리에 세
뇌되었는지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던 자주국방정책을 잠
꼬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0·26 무렵 한미 양국의 네 인물--박정희,
김영삼, 김재규, 카터--중에서 세 사람은 한국적 민주주의 대 미국식
민주주의의 이념 대치전선에서 반박 편에 서 있었다는 얘기다. 인권자
유 평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앞세운 미국식 민주주의 앞에서 주체
성에 기초한 박정희의 한국식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있었다. 미국정부는
한국내의 야당과 민주화 운동 단체들을 박정희의 공격으로부터 비호하
기 위하여주 공격수역인 김재규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6월말의 카터 방한을 앞두고는 한 달 사이에 확인된 것만 세번
김재규와 글라이스틴의 대화가 있었다. 최근에 비밀이 해제되어 공개된
문서에서 대화내용을 부분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한다. 1979
년 6월20일에 주한 미국 대사 글라이스틴이 국무부에 지급으로 보고한
김재규정보부장과의 면담 내용은 이러했다.

[나는 오늘 김 부장을 만나서 단도직입적으로 카터-박정희 정상회담
과 한국내 인권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권향상을 상징하는 정치적
제스처가 있으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전후
하여 인권탄압으로 생각될 수 있는 행동을 피해달라고 했다. 심각한 문
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는 사례로서는 몇 주 전에 있었던 카터 방한
반대선교사들에 대한 위협, 김대중에 대한 행동의 자유 제약, 그리고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회담
이후에 있어야 할 한국정부의 바람직한 행동을 강조하기 위하여 나는
포드대통령의 방한 뒤에 있었던 탄압의 예를 들었다. 김재규 부장은 내
가 말한 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이하 김 부장의 발언은 공개문서에
서 삭제됨)].

6월26일 카터의 서울 도착을 사흘 앞두고 글라이스틴 대사는 김재규
부장에게 '반체제 인사들의 가택연금 같은 행동은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도쿄에 있던 밴스 국무장관 앞 전문).

글라이스틴 대사가 마지막으로 김재규를 만난 것은 한 달 전인 9월26일
이었다. 글라이스틴의 보고 전문에 따르면 두 사람의 대화가 거의 끝나
갈때 김 부장이 물었다.

"한국 경제와 국내정치의 진행방향에 대한 대사의 분석을 듣고 싶습
니다.".

"나는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한국경제는 앞으로 여섯 달에서 열두 달
사이에는 침체할 것으로 봅니다. 이 기간에 점차적인 물가앙등으로 해
서 임금인상에 대한 압력과 정치적인 압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
는 한국경제가 기본적으로 건전하며 성장을 계속하겠지만 과거와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두 가지 점이 나를 걱정스럽게 만듭니다. 하나는 정치적
인 양극화 현상으로서 이는 국가를 분열시키고 정치적인 불안정을 초래
할 것입니다. 신민당 사태를 둘러싼 국회의 공전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관련된 것으로서 평화적인
권력이동입니다. 현재의 헌법과정치조직으로서는 평화적 권력이동을 다
루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나는 한국의 상황을 이란과 비교하는 것에
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이란보다도 내부적으로 훨씬 강력하며
공통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장래에 대해서 낙관하고 있습니다.".

대사의 이런 분석에 대해서 김재규는 "귀하의 판단은 매우 정확하다"
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권력이동기나 전쟁과 같은 국내위기상황에서 한국사람들의 가치관
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한국의 발전과 안보를 위해서 가장 중요
한 것은 정치의 안정이며 이는 정부가 확보해야 할 사안입니다.".

김재규 부장은 한국 경제와 정치의 변화전망에 대한 대사의 생각에
대해서 유별난 흥미를 보였다. 그는 정부의 기본적인 통제력에 대해서
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김 부장은 박 정권에
대한불만이 쌓여가고 있고 경제 불황이 그런 불만축적을 더욱 가속화시
키지 않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전보다 더 걱정하고 있었다. 김재규
부장은 공안기관의 권력남용이 억제되어야 한다는 대사의 견해에 대해
서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글라이스틴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김재규가 권력이동과 박 정권에 대
한 정치적 경제적 불만의 누적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강권통치에 반
대하는 미국 대사의 입장에 동조했다는 점은 그가 미국의 논리에 설득
되어 박정희식 통치에 대해서 회의하고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1979년 11월19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국무부에 흥미로운 해명성 전문
을 보낸다. 그 요지.

[박 대통령의 죽음에 미국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이 한국에서 끈질
기게나돌고 있다. 일본과 미국 언론은 미국이 박정희 정부를 비판한 것
은 쿠데타 음모자들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쓰고
있다. 김재규도 앞으로 재판에서 나와 나의 전임자들이 자신에게 박 대
통령을 공격하라고 부추겼다는 주장을 하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우리
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한국내의 어떤 사람들이나 조직들에
게 박정희 정권이 1년 이상 유지될지 의심스럽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나는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박
대통령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 때문에 한국인들이 우리의 비판
을 오해하여 박정희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다든지 그가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미국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든지 하는 식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은 있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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