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자른 듯한 단어 선택, 편안한 말투, 패널들을 끌어가는 능력,
적절한 유머…. 지난 2일부터 13일까지 계속된 '조선일보 KBS 공동주
최 정치개혁 대토론회'에서 시청자에 깊은 인상을 준 사람이 하나 있
다. 사회를 본 나형수(58) KBS 해설위원장이다. 그는 이제 스타가 됐
다. 토론회가 시작된후 걸려온 전화가 얼마나 많았던지 비서가 알아
서 따돌리고 있다.
"말년에 일복이 터졌어요. 올해말이면 정년퇴직인데. 31년 기자
인생 마지막 해에 이처럼 큰 일을 맡고, 칭찬까지 들으니 참 묘합니
다.".
나 위원장은 사회자로 결정된후 '주자들을 좀 편하게 해주자'고
전략을 짰다고 한다. "시청자에 제대로 된 정보를 주려면, 대선 후보
들이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사회자와 패
널의 역할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드러
운 농담으로 시작하고, 웃으면서 끝내도록 노력했지요.".
그는 민감한 정치 토론인 만큼 편파성, 공정성 시비가 나오지 않
도록 무척 조심했다고 한다. 31년 방송 경력을 가진 그가 토론기간
내내 사무실에서 혼자 거울 보며 연습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
의 없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 원칙이 파괴돼, 현 정치 상
황에선 진리가 없습니다. 여야는 철저히 대화하고 타협해야 해요. 그
러면서 깨지지않을 원칙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국민 앞에서 토론하고
약속한다는 의미에서 TV가 가장 좋은 토론의 장입니다. 이제는 'TV
정치'시대죠.".
소방관 구실에 진지한 분위기 유도까지
그는 이번 토론회로 갑자기 유명해진것 같지만, 사실은 꾸준히 TV
와 라디오에 출연해왔다. 매일 아침 6시45분 KBS 1TV 아침 뉴스의 해
설 시간에 다른 해설위원들과 교대로 출연한다. 또 작년말부터 매주
월∼목요일 KBS 1라디오 '뉴스와 화제'(오전 8시)를 진행해오고 있다.
한달에 한번씩 KBS 1TV '심야토론'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는 "라디오
진행이 가장 재미있고 반응도 많다"고 말했다.
"토론 프로그램을 자주 진행하며 느낀게 있습니다. 인신공격적으
로 질문해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면 '와 훌륭한 질문이다'하고 착각
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선진 토론문화하고는 영 거리가 멀지요. 예의
는 최대로 지키고, 질문 내용만 날카로워야 공감과 설득을 불러 일으
키지요. 그래서 이번 토론회에서는 분위기가 딱딱해지면 내가 소방관
역할을 하고, 너무 가벼우면 진지하게 만드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위원장은 KBS 보도국에서 최고참이다. 전남 나주 출생으로 광주
서중, 광주고, 서울대 철학과(59학번)를 나온후, KBS가 국영 중앙방
송국이던 시절인 67년, 공채 기자 1기로 입사했다. 배학철 대구민방
초대사장, 이양길 삼척 MBC 사장 등이 그의 동기다. 그는 경제부에서
주로 기자생활을 했다. 경제부장과 취재부국장을 거치고, 82년부터
기자 현업에서 살짝 비켜난 자료실장 자리에 5년간 가 있었다. 89년
엔 미주총국장으로 발령 받아 워싱턴에서 3년간 특파원을 지냈다. 돌
아와 해설위원, 보도제작국장을 거친후 95년 2월 해설위원장이 됐다.
"유능한 기자는 아니었다"는 그이지만 경쟁 방송사 기자들을 물먹
인 즐거운 기억들이 있었다. 워싱턴에서 특파원하던 시절, 차세대 전
투기 결정이 임박했을 때다. F16이냐, F18이냐를 놓고 취재경쟁도 치
열했다. 그는 두 전투기 제작 회사를 찾아가 전투기를 타보고 소개하
는 특집을 준비하기로 했다. 세인트루이스와 포트워스로 출장을 가야
했다. 경쟁 방송사 특파원들에게는 당시 국내에서 논란거리였던
"'토지공개념' 취재하러 간다"고 거짓말했다. 전투기 취재와 보도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그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경쟁 방송사 특파
원들은 "또 토지공개념 하러 갔어?"하며 경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