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1968년 9월, 안광⑬ ##.
다음날 돌아본 시멘트 쪽에서도 소득이 나쁘지는 않았다. 켕기는 구석
이 있어서인지 경기가 좋아서인지 점심전에 들른 두어 곳에서 5만원을
만들 수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길에 들른 잘 나가는 사항(사갱)이 다
시 2만원을 보태주어 전날만은 못해도 하루벌이로는 괜찮은 셈이었다.
추석이 이틀 뒤로 다가와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예정에도 없는 단양
을 거쳐 경북을 벗어났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흘 동안에 본 재미
와 특별히 지부 표시가 없는 여론조사소의 조사원 신분증이 그들의 배짱
을 길러준 까닭이었다. 그러나 내일 모레가 추석이라 가봤자 사람이 있
을것 같지 않아 그만치서 돌아서기로 했다.
"방구 길들자 보리양식 떨어진다 카디, 우리가 그짝일세. 인제 겨우
해먹을 만하다 싶으이….".
못내 아쉬워하는 박기자를 달래 점촌으로 나오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
져 오고 있었다. 읍내로 들어가는 길목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시키고 기
다리는데 안채에서 질펀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밖은 식당이라도 안채
는 색시집인 듯했다. 먼저 나온 소주를 홀짝이던 날치가 은근한 목소리
로 말했다.
"어이, 이반장. 우리도 여기서 한판 벌이고 가지. 경비쪼로 한 3만원
만 제치면 우리 모두 짝짝 달라붙는 겐자꼬로 객고도 풀 수 있을 걸….".
"맞다. 지부장님이 우리 댕긴데 일일이 찾아댕기미 얼매씩 뜯깅나꼬
물어보겠나, 어예겠노? 우리도 그만 품은 했고오 고마 우리 여다서 한
뭉티기 꺼내 몸 한분 풀고 가시더. 월급날 되믄 개도 천원짜리 물고 댕
긴다는 데가 여기 점촌 아이껴? 물 좋은데 고기 몰리드키 돈 많은데 이
쁜 기집아들 몰리는 거는 당연한 게고-- 어떠이껴? 그래 안될리껴?".
박기자도 반색을 하며 날치를 거들고 나섰다. 그런 의논에 끼여들 처
지가 못되어 그렇지 강군도 속으로는 그리되기를 바라는 눈치같았다. 그
렇지만 명훈은 달랐다. 술과 여자 모두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런식으로 즐기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이번이 자신의 책임아래 이루
어진 여론조사소의 첫 출진이란 점도 되도록이면 그 성과를 온전히 보존
하고 싶게 했다. 당분간은 싫어도 그 여론조사소에 의탁하지 않을 수 없
기 때문이었다.
"길게 봅시다. 추석 대목에 차량 한대와 사람 넷이 붙어 겨우 이십만
원이요. 이 정도로는 잇뽕형의 욕심에 안찰걸. 그걸 또 삥땅쳐 해롱대다
가 괜히 먹피보지 말고 그냥 곱게 돌아가요. 술이야 안광 돌아가서 사달
라면 되는거구. 그리고 또-- 늦더라도 오늘안에 돌아가야 내일 추석 단
대목 기관장들 촌지라도 몇푼 거둘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둘을 달랜 뒤 밤길을 재촉해 안광으로 돌아갔다.
밤길인데다 도중에 타이어가 터져 갈아 끼우느라 늦어진 그들이 안광
에 이른 것은 밤 열한시가 넘어서였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불카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잇뽕형이 그들을 보고 성급하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됐어? 잘 먹혀들어가? ".
명훈은 간략한 결과보고와 함께 그 동안의 경비 빼고 21만원이 든 봉
투를 잇뽕에게 내밀었다. 불카하던 잇뽕의 얼굴이 일시에 환해졌다. 말
은 씀어도 만족한 기색이었다.
"보자-- 차밑으로 한 3만원은 갈라둬야 하고, 강군 저새끼도 돈 만원
은줘야겠지. 그리고오-- 사무실 유지비와 적립금으로도 한 5만원은 제쳐
두는게 좋겠고….".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연 잇뽕은 시원스럽게 돈을 갈랐다. 그리고 남은
12만원을 자신까지 넣어 네 몫으로 나누었는지 한사람에게 3만원씩을 돌
렸다. 그에게도 한몫은 주어야한다고 생각들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떼내는게 너무 지나쳐 보였다. 조심은 하면서도 그냥 보아넘길 수는 없
다는 듯 박기자가 퉁명스레 물었다.
"적립금은 또 뭐이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