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8.19 03:29
[땅집고]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3단지는 올 3월 재건축 추진에 필요한 첫 관문인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 아파트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최근 두번째 관문인 정밀안전진단 진행을 갑자기 중단했다. 주변에 여건이 비슷했던 태릉우성 아파트가 정밀안전진단에서 탈락한 것을 보고 통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 정밀안전진단에서 한번 탈락하면 예비안전진단부터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국 상계주공3단지는 내년 3월 대선 이후로 정밀안전진단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추진준비위 관계자는 “안전진단을 한 번 받는 데만 2억~3억원 정도 드는데, 문재인 정부는 재건축을 진행시켜줄 마음이 없다고 조합원들이 판단하고 있다”며 “통과 가능성도 없는데 안전진단하느라 돈 쓰지 말고 대선 결과를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최근 재건축 안전진단을 중단하는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안전진단에서 탈락시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노원구 상계주공3단지와 상계주공6단지가 내년 대선 이후로 정밀안전진단 일정을 미뤘고, 목동 신시가지 등 다른 재건축 단지도 안전진단 일정을 재검토하고 있다.
■“통과시켜줄 맘도 없는데…차라리 대선 이후로 미루자”
상계동 일대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일제히 안전진단을 포기한 것은 지난 6월 공릉동 태릉우성아파트 사례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태릉우성(432가구)은 입주 37년된 아파트로 노원구에서 재건축이 가능한 14개 주공아파트(2만9325가구)보다 먼저 지었다. 현지 주민들은 태릉우성이 안전진단 최종 관문인 적정성 검토를 통과하지 못하자, 상계주공은 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태릉우성은 적정성 검토에서 60.07점으로 C등급(유지보수) 판정을 받아 재건축이 불가능하게 됐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1차 정밀안전진단에선 48.98점(D등급)으로 통과했지만, 적정성 검토(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1차보다 10점이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안전진단은 점수가 낮을수록 통과 가능성이 높다. 윤영흥 태릉우성 재건축 추진준비위원장은 “1차 정밀안전진단 비용만 1억5000만원, 적정성 검토는 지자체 지원을 받아 약 7000만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며 “현재 적정성 검토 기관 대상으로 이의신청을 준비하고 있는데, 만약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빠른 시일 안에 재추진은 어렵다”고 말했다.
■ 2018년 이후 적정성 검토 통과 단지는 단 4곳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은 지자체의 현지조사(예비안전진단)와 민간업체를 통한 안전진단(정밀안전진단)을 거쳐야 한다. 정밀안전진단(100점 만점)에서 ▲A~C등급(56~100점)은 재건축 불가(유지·보수) ▲D등급(30~55점)은 조건부 재건축(공공기관 검증 필요) ▲E등급(30점 미만)은 재건축 확정 판정이다. C등급 이상을 받으면 재건축이 불가능하고, E등급(30점 이하)을 받으면 곧바로 재건축이 가능하다. D등급(31~55점)을 받을 경우 적정성 검토 대상이 된다. 이 때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시설안전공단 적정성 검토 결과에 따라 재건축이 결정된다.
서울 지역 대부분 재건축 추진 아파트가 조건부 재건축(D등급)까지는 무난하게 통과한다. 하지만 정부 입김이 강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 문턱을 넘는 것이 어렵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된 2018년 이후 3년여 동안 서울에서 적정성 검토까지 통과한 단지는 ▲서초구 방배삼호 ▲마포구 성산시영 ▲양천구 목동6단지 ▲도봉구 도봉삼환 등 4곳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기초지자체들이 공식적으로 적정성 검토의 형평성에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태릉우성이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하자 노원구청은 지난 15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공식적으로 이의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원구 관계자는 “전문기관의 객관적인 검토를 거쳐 이의제기 항목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강동구 역시 ‘고덕주공9단지’가 적정성 검토 결과C등급(유지보수)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국토부 산하 기관인 국토안전관리원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구조안전성 비중을 30~40%로 조정하고 시설노후도와 주거환경에 더 가중치를 주자는 내용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토부는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경영과 교수)은 “정부가 서울 지역 정비사업을 규제해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생각에 주거환경 악화와 아파트 공급 부족은 못본 척하고 있다”며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지 못한다면 평가 기준이라도 투명하게 공개해 해당 아파트 주민들이 합리적 예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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