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8.18 03:15
[땅집고]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에서 실거주용 아파트를 매수하려던 A(45)씨. 자금이 부족해 주택 구입을 망설이던 도중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매매가 9억5000만원에 집을 내놓은 집주인(매도인)이 거래 과정에서 부족한 자금을 빌려주겠다고 나선 것. A씨는 현금 3억3000만원에 더해 주택담보대출(주담대)로 4억원을 빌려도 2억3000만원이 모자랐다. 집주인은 모자란 돈은 나중에 갚는 대신 그만큼 해당 주택에 후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겠다고 했다. A씨는 “그야말로 ‘영끌’해도 자금이 부족해 포기하려던 차에 자금을 빌려준다는 말에 매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주담대가 막히면서 아파트 매도인이나 거래를 알선한 공인중개사를 통해 주택 구입 부족 자금을 조달하는 이른바 ‘사(私)금융’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채권 보전을 위해 매매 대상 아파트에 매도인이나 공인중개사 명의로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당장 집을 사고 싶은 수요자들은 은행권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내더라도 이 같은 사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아파트 매수에 나선 수요자들 사이에 매도인 명의로 근저당을 설정해주는 방식으로 부족한 대금을 조달하는 신종 사금융이 확산하고 있다. 매도인은 매수인이 갖고 있는 현금만 받고 매매 거래를 체결한 뒤, 향후 넘겨받을 거래대금 대해서는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통상 모르는 사람끼리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아파트를 사고 싶어 하는 매수인과 종합부동산세 등 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집을 처분하고 싶어하는 매도인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매도인 입장에서는 집을 사는 사람에게 집 살 돈을 빌려줘 거래 속도를 높일 수 있고, 매수인 입장에서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등으로 부족한 돈을 빌릴 수 있으니 서로 좋은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심지어 부족 매수자금을 거래를 주선하는 공인중개사로부터 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인중개사가 매매를 중개하는 주택에 근저당을 설정하고 매수인에게 부족 자금을 빌려주는 것. 공인중개사는 매매 거래를 성사시킨데 따른 중개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데다, 대여 돈에 대해 이자까지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다.
근저당을 설정하는 이유는 매수자가 돈을 갚지 못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채권자는 근저당 설정액만큼 변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상환 기간은 3개월에서 1년 정도로 길지 않게 설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여 금리는 매수 금액, 중개보수 수준에 따라 무이자부터 연 10~20%까지 다양하다. 영등포구 K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과거 강남권 고가 아파트 거래에서 제한적으로 활용했던 방식인데,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10억원 미만 아파트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1억원 이상 큰돈은 대체로 매도자로부터 빌리고, 수천만원 정도 돈이라면 공인중개사가 빌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은행권 주담대 규제가 심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금리가 더 높은 사금융을 활용하는 매수자도 적지 않다. 올 상반기 경기 일산신도시에 집을 구입한 김모(34)씨는 1금융권 대출 외에 부족분을 연 7.5% 금리로 P2P대출을 이용해 조달했다. P2P 대출은 작년 8월 시행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에 따라 LTV 70%가 적용된다. 김씨는 “은행 대출을 충분히 갚을 수 있는데도 금리가 더 높은 P2P업체로부터 돈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억울했지만 지금이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영영 살 수 없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가계대출을 계속 조이면서 사금융 거래가 더욱 확산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P2P금융 등 사금융이 활성화되면 수요자로선 자금 조달처가 늘어나 부동산 거래 증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주로 저신용자들이 3·4 금융권을 이용하는 만큼 정부에서 P2P 금융 역시 적합한 규제를 통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금리 변동 가능성이 높은 현 상황에서 대부업체나 P2P 대출을 이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며 “단기 자금 융통에 활용도가 높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고금리 대출 상품에는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수 있다”고 했다. /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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