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8.12 02:33
[땅집고] 경기 의왕시 포일동 ‘인덕원푸르지오엘센트로’. 지난 6월 이 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가 16억3000만원에 팔리면서 해당 주택형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그런데 최근 온라인 부동산 중개사이트에는 호가(呼價·매도인이 요구하는 가격)가 최고 22억원으로 등록돼 있다. 최고가 거래가 성사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호가가 5억7000만원이나 뛴 것. 서울 강북에서 속칭 대장주로 꼽히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 호가가 최고 21억원인데 이보다 1억원 더 높은 금액이다.
인천 서구 청라동 일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청라한양수자인레이크블루’ 84㎡가 이달 초 10억8500만원으로 최고가에 거래됐는데, 현재 매도 호가는 18억원이다. 호가가 실거래가보다 7억1500만원이나 높다. 근처 ‘청라센텀대광로제비앙’도 마찬가지. 이 아파트 82㎡ 호가는 14억원으로, 지난달 실거래 최고가(7억7000만원) 대비 거의 2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최근 수도권 외곽 아파트 곳곳에서 아니면 말고식 이른바 ‘호가 지르기’가 확산하고 있다. 집주인들이 실거래 최고가 대비 수억원 높은 호가에 내놓은 매물이 수두룩하다. 실거래가보다 터무니 없이 높은 호가에 나온 매물은 거래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호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결국 실제 집값을 급등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 집값도 오르는데…일단 높여 불러보자”
집주인들이 호가 지르기가 심한 곳은 개발 호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지역이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 일대. 지난 6월 인덕원역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노선 신설역으로 추가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파트값이 줄줄이 신고가를 찍었는데, 현재 호가는 신고가보다 최고 6억원 정도 더 비싸다. 인덕원역에서 직선거리로 1.6㎞ 정도 떨어진 신축 대단지 ‘인덕원푸르지오엘센트로’ 아파트 84㎡는 지난 6월 16억3000만원에 팔렸다. 현재 호가는 최고 22억원이다. 근처 ‘의왕내손e편한세상’ 84㎡도 실거래 최고가(11억2000만원)보다 호가(15억원)가 3억8000만원 더 높다.
2023년까지 800병상 규모 종합병원과 의료산업 관련 학교·기관·기업이 들어서는 인천 청라국제도시도 비슷하다. 지난달 서울아산병원과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청라의료복합타운’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되면서 사업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지자, 집값과 호가 갭(gap)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의료복합타운예정지 인근 ‘청라한양수자인레이크블루’ 84㎡는 이달 최고가가 10억8500만원인데, 호가는 이보다 7억원 이상 높은 18억원이다. 이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더샵(18억5000만원)’이나 성동구 금호동 ‘e편한세상금호파크힐스(18억3000만원)’ 최고 호가와 맞먹는다.
■중개사는 집주인 눈치만…‘배짱 호가’라도 일단 등록
수도권 아파트 집주인들이 아니면 말고식 배짱 호가를 던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결국 집주인들이 현재 시장 가격이 아니라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여지가 있다’는 기대감을 반영해 집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난해 정부가 ‘허위 매물’을 잡겠다며 공인중개사법을 개정한 것도 아파트 호가를 높이는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는 공인중개사가 온라인 부동산 중개플랫폼에 허위·과장 광고를 올리면 최고 5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지난해 8월 21일부터 시행했다.
그러자 공인중개사들이 매수자와 매도자가 원하는 금액 격차를 좁히기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집주인들이 최고가 대비 너무 높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으면 중개사들이 ‘이 가격에 내놓으면 집이 안팔린다’며 호가를 어느 정도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인중개사가 아파트 소유주가 원하는 금액 아래로 호가를 등록하면 소유주들로부터 허위 매물로 신고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개사들이 집주인 눈치를 보면서 ‘터무니 없는 호가’라도 일단 등록해줄 수 밖에 없는 분위기인 셈이다.
일부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들면서 “우리 아파트는 ○○억원 이하로는 팔지 맙시다”, “적어도 신고가 대비 ○○억원 이상으로 매물 등록합시다” 등 ‘호가 지르기’ 관련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호가까지 수억원씩 뛰고 있지만 이는 실제 시장 가격이 아닌 ‘이상 가격’이라고 지적한다. 심형석 미국 IAU 부동산학과 교수는 “인위적으로 집값을 끌어올린 경우 추후 하락기에 다른 단지보다 거품이 더 많이 빠지면서 가격이 제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다. 즉 급하게 내집마련하느라 상투 잡은 수요자만 피해를 보는 구조”라며 “핵심지가 아닌 외곽 지역 아파트가 이 같은 일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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