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8.11 03:44
[땅집고] “역삼역 2억3000만원, 노원역 1억8000만원에 팝니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역 이름을 팔기로 했다. 2호선 역삼역, 2·5호선 을지로4가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핵심 정차역이 여럿 포함돼 주목된다. 역명 1개당 최저 입찰 가격은 적게는 6000만원, 많게는 2억30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적자만 1조원을 넘긴 서울교통공사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중단했던 지하철 역명 판매 사업을 4년여 만에 재개하면서 재정난 타개에 나섰다.
■“최고가 써내 지하철역 이름 산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 지하철 1~8호선 8개역을 대상으로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을 진행, 오는 12일까지 기관·기업·학교 등을 대상으로 공개 입찰을 받는다고 밝혔다. 역명 병기란 기존 지하철역 이름 옆이나 아래에 부(副)역명을 추가해서 표기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역명병기 판매 대상역과 최저 입찰가격은 ▲2호선 역삼역 2억3000만원 ▲2·5호선 을지로4가 2억2000만원 ▲4·7호선 노원역 1억8000만원 ▲2호선 뚝섬역 1억3000만원 ▲5호선 발산역 8000만원 ▲7호선 내방역 6000만원 등이다.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응찰자가 지하철역 이름을 따내는 최고가 입찰 방식이다. 낙찰자는 3년 동안 부역명을 쓸 수 있으며, 이후 1회에 한해 연장 계약이 가능하다. 다만 지하철역 이름을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각 역에서 반경 500m 안에 위치한 기업·기관·대학 등만 입찰할 수 있다. 만약 해당 구간에 적절한 입찰자가 없을 경우 반경을 1㎞까지 확대한다. 응찰자 여럿이 동일한 금액을 써냈다면 지하철의 공공성을 고려해 조직 성격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다. 공익기관·학교·병원·기업체·다중이용시설 순이다.
낙찰자들은 서울교통공사와 역명병기 유상 계약을 체결한 뒤 60일 이내에 해당 역사 내 폴사인·출입구·승강장·안전문의 역명판, 종합노선도, 전동차 단일노선도 등에 부역명을 추가할 수 있다. 지하철 역사 내 시설들을 활용해 ‘24시간 홍보효과’를 낼 수 있는 셈이다. 부역명을 낙찰받은 기업·기관이 해당 역 일대가 갖는 지역 상징성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도 이득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2017년 종각역 부역명을 3억8000만원에 낙찰받았던 SC제일은행은 종각역명을 사용한 3여년 동안 브랜드 인지도가 3%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며, 계약을 1회 연장해 역명을 2023년 8월까지 쓰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역명 팔아봐야 수십억…1조 적자 못메워
서울교통공사는 현재까지 유료 역명병기 재계약률이 89.6%에 달할 정도로 높다는 점을 들어 이달에도 입찰률이 높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사실 이 사업은 서울교통공사가 새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해 2016년 시작했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7년 무분별한 지하철 역사 내 무분별한 상업광고를 줄이겠다며 내놓은 ‘문화예술철도’ 사업과 겹치면서 사실상 중단했다. 그러다가 4년여 만에 사업이 부활한 것이다.
과거 유상 역명 병기가 이뤄진 지하철역 중 가장 이용료가 비쌌던 역은 2호선 ‘을지로입구역’이었다. IBK기업은행이 계약금(3년 기준) 3억8100만원에 낙찰받았다.
두 번째로 비싼 역은 7호선 청담(한국금거래소)역으로 계약금 3억6210만원이었다. 이어 4호선 명동(정화예술대)역 3억4000만원, 3호선 압구정(현대백화점)역 3억2020만원, 2·4호선 사당(대항병원)역 3억700만원 순이었다.
계약금이 가장 낮은 곳은 8호선 단대오거리(신구대학교)역으로 1억20만원을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 5호선 마곡(홈앤쇼핑)역 1억600만원, 8호선 석촌(한솔병원)역 1억1000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서울교통공사가 역명병기 유료 판매 사업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1조원 적자’를 꼽는다. 지난해 적자가 1조1337억원에 달해 수익 사업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 올해도 적자 규모가 1조6000억여원으로 예상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유료 역명병기 사업 외에도 지난 6월 일부 보유 부지를 매각해 8000억원을 마련하는 등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서울교통공사처럼 국민 삶과 밀접한 공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 적자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번에 내놓은 유료 역명병기 사업 수익은 많아야 수십억원 정도여서 조단위 적자를 메꾸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 그래서 세금이 도대체 얼마야? 2021년 전국 모든 아파트 재산세·종부세 땅집고 앱에서 공개. ☞클릭! 땅집고 앱에서 우리집 세금 바로 확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