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6.09 07:21 | 수정 : 2021.06.09 10:01
[땅집고]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2010년 완공한 ‘네이버 그린팩토리’ 사옥. 지하 7층~지상 28층 규모로, 건물 4면을 네이버의 상직색인 녹색 통유리로 마감한 것이 특징이다. 유리 표면에 금속 재질을 코팅해 단열 성능을 끌어올린 ‘로이(Low-Emissivity) 복층 유리’다. 단열에 취약한 일반 유리를 시공하는 것과 비교하면 2~3배 정도 비싼데, 자외선을 반사하고 내부 온도는 유지해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어 대기업 사옥이나 호텔, 병원 등에 주로 쓰인다.
그런데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 네이버 사옥 때문에 10년 넘게 ‘빛 공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건물 외벽 유리에 반사된 햇빛이 집 안에 직사광선처럼 내리쬐는 바람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 주민들은 오전 5~6시 해 뜰 때부터 빛이 들어오기 시작해, 오전 7~11시가 되면 빛 반사량이 가장 많아져 눈을 뜰 수가 없고, 피부가 따가운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빛 반사가 너무 심해 거실창에 두꺼운 호텔용 커튼이나 검은색 블라인드를 치고 전등에 의존해 생활하는 가구도 적지 않다.
특히 2003년 입주한 ‘미켈란쉐르빌’(803가구) 아파트 A·D동 입주민 피해가 크다. 네이버 사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불과 30여m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주민 70여명은 2011년 3월 네이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심 재판부는 주민 손을 들어줬다. 현장 검증 결과, 네이버 사옥에서 해당 아파트로 유입된 태양 반사광이 일반적으로 앞이 잘 안보일 정도의 휘도 기준치(2만5000cd/㎡)보다 최소 440배에서 최대 2만9200배 정도 높았다는 것. 네이버가 가구당 위자료 500만~1000만원, 손해배상금 100만~600만원을 각각 지급하고 태양반사광을 줄이는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2심에선 판결이 뒤집어졌다. 네이버 측이 “건축법에 따라 사옥을 지었으니 문제 없고, ‘미켈란쉐르빌’이 상업지구에 지은 아파트여서 입주민이 피해를 어느 정도 감안했어야 한다”고 반론한 것. 2016년 2심 재판부는 실내 일부가 특별히 밝아져 정신·감정적으로 불쾌할 수는 있지만, 반사광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이 가능해 입주민 피해가 금전적으로 배상할 만한 정도는 아니라며 원고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그런데 이달 초 대법원은 다시 입주민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2심은 빛 반사에 따른 주민 피해 정도를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하급심이 태양반사광 침해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부분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 대법원은 “네이버 본사에 빛 반사를 줄일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지도 다시 심리하라”고 주문했다. 업계에선 그 동안 대법원이 빛 공해로 인한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고 판결한 적은 여럿 있었지만, 빛 반사 피해를 방지하는 시설까지 설치하라고 한 적은 없기 때문에 의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주문대로 최종 판결이 날 경우, 현재 건물 빛 공해 관련 유사한 분쟁을 겪고 있는 사건의 판결 뿐 아니라 앞으로 건축하는 오피스 건물 설계 등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네이버 사옥은 조망이 가능한 창문을 제외한 나머지 유리 외벽에 불투명 재질 필름을 붙이거나, 태양광이 반사되는 지점을 분산시키는 루버(lover·격자형 차광판) 등을 설치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아직 설계가 나오지 않아 정확한 금액을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대형 건물 외부를 공사하는 만큼 가설·부대공사, 자재 비용과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시공비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건축계에선 광화문·여의도 등 오피스 빌딩만 모여 있는 지역에선 이번 판결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업무·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혼재된 곳에선 법적 갈등이 터져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일보 땅집고 건축주대학에서 건물 기획·설계를 주제로 강의하는 건축가 A씨는 “빛반사가 우려되는 지역에서는 이미 지자체 건축 심의 과정에서 빛 반사를 줄이기 위한 수단을 의무화하고 있어 네이버 건물도 당시 규정에 맞춰 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판결에 따라 법 충돌로 인한 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고, 기존 통유리 건물이 있는 지역에선 소급적용 여부가 문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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