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5.21 03:39
[데이터로 보는 부동산] ⑦전세금 끌어올리는 규제로 중장기 하락장 멀어진다
[땅집고] 전세금은 주택의 사용가치, 매매가격은 사용가치에 더한 투자가치를 반영한다. 이렇게 봤을 때 매매가와 전세금의 갭(gap·격차)은 매매가격의 버블(거품) 크기를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매매가격이 전세금보다 크게 높아지면 집값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는 의미다.
이런 면에서 서울 집값의 중장기 흐름을 매매가격과 전세금의 ‘갭’과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다. 2009~2013년 서울 아파트값 중장기 하락장의 시작점에서는 매매가격이 전세금보다 크게 높았다. 2008년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은 38.7%에 불과했다.
이후 매매가는 정체하거나 하락했고 전세금은 꾸준히 올라 격차를 줄였다. 2013년 12월 아파트 전세금은 매매가격의 61.5%까지 올랐다. 이때 시작된 서울 집값 중장기 상승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값의 중장기 상승장이 끝나기 직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세금 대비 크게 상승하면서 매매가격과 전세금의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이다. 전세가율은 올해 4월 기준 55.8%로, 2013년 12월과 비교했을 때 격차가 벌어졌다. 하지만 2008년 하락장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격차가 적다.
■집값은 못 잡고 전세금만 올린 정부 규제
매매가격과 전세금 격차를 봤을 때 현재 서울 집값 거품은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필자는 정부가 바라는대로 집값이 하락하려면 매매가격과 전세금 격차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정부 정책이 늘 실패했던 것에서 보듯이 매매가격을 조절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세금을 떨어뜨리는 수단이 더 유효해 보인다. 전세금을 낮추는 즉효약은 아시다시피 ‘주택 공급’이다.
전세금은 주택 수요와 공급을 거품 없이 그대로 반영하는 지표인 만큼, 대규모 공급은 필히 전세금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일단 대규모 공급으로 전세금이 떨어지면 매매가와 전세금의 갭이 벌어져 매매가도 하방 압력을 받게 된다. 매매가의 하한 지지선이 낮아지는 셈이다.
전세금을 하락 시킬 만큼 대규모 공급을 이뤄내려면 당연하게도 서울·수도권에 대량으로 주택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3기 신도시는 일러야 2026년부터 입주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앞선 글에서 밝혔듯 서울은 2023~2024년 일시적으로 공급이 증가한 이후 다시 공급 절벽을 맞는다.
많은 이들이 모르거나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규제 기조로 2020년대 중후반 입주로 연결되어야 할 지난해 서울 아파트 인허가 실적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주택 인허가는 5만8181가구로 2009년(3만6090가구) 이후 11년 만에 가장 적었다. 게다가 정부는 집값 잡기에만 혈안이어서 부작용에는 신경을 못 쓰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는 듯 보인다.
정부의 다른 규제도 전부 전세금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 조건에 실거주 기간이 의무화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양도차익이 큰 서울 아파트로 실주거지를 옮기는 집주인이 많아져 전세 매물이 줄었다. 임대차 3법 시행도 마찬가지다. 반면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사업 일정이 밀리는 재건축 단지가 속출하며 향후 공급(입주 시기)은 지연되는 중이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이 청약 대기수요를 자극해 전세 수요는 더욱 늘어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설상가상이다.
이같은 ‘규제 융단폭격’으로 매매가를 잡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 부작용으로 전세금 고공 행진은 불가피하다. 즉, 매매가는 각종 규제로 주춤해도 아직까지 높은 전세가율의 추가 반등은 매매가의 중장기 하락 가능성을 낮추게 된다.
연간 기준으로 8년 연속 상승장이 확실시돼 사상 최장기간 상승을 지속하고 있는 서울 아파트 시장은 막대한 상승 피로감 누적으로 진작에 잡혔어야 한다. 하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 줄어드는 입주 물량과 높아지는 전세가율로 아직까지도 추세적인 하락장 전환을 논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