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08 10:00 | 수정 : 2021.04.08 10:44
[땅집고]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10년 만에 서울시장직으로 복귀했다. 오 당선인은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제 2의 한강르네상스 사업’ 격으로 서울시 부동산 정책이 전면 수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서울시 주택공급을 틀어막았던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고(故) 박원순 시장이 추진했던 ‘2030서울플랜’이나 도시재생사업 등 상당수 부동산 정책이 수정·폐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건축 규제 확 푼다…향후 5년간 36만가구 공급
오 당선인은 2006~2011년 서울시장 재직 기간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도시공간 구조를 개편하는 ‘한강 르네상스’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여의도 국제금융지구 ▲상암 DMC 랜드마크를 비롯해 한강변 최고 50층 아파트 공급 등 대규모 개발을 통해 한강 일대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사업들을 포함했다. 이번 선거에서 오 당선인이 내걸었던 공약도 옛 한강 르네상스 정책 방향과 거의 일치한다.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및 철폐를 통한 개발이 골자다.
오 당선인은 ‘스피드 주택공급’을 핵심 공약으로 소개하며 5년 안에 새아파트 36만가구를 공급하고, 이 중 절반(18만5000가구)은 재개발·재건축·뉴타운사업 정상화를 통해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한강변 정비사업의 층고 제한을 현행 35층에서 50층까지 완화하고, 서울시 주택공급을 담당하는 주택국과 도시 전체 미관을 담당하는 도시계획국을 통합해 개발 인허가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그가 “취임 일주일 이내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발언한 만큼, 대규모 재건축단지가 밀집해있는 ▲양천구 목동 ▲영등포구 여의도 ▲노원구 상계동 ▲강남구 압구정·대치동 ▲광진구 자양동 등에서 재건축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나머지 18만5000가구는 ▲기존 서울시 공급계획 7만5000가구 ▲상생주택 7만가구 ▲모아주택 3만가구 등으로 공급한다. ‘상생주택’이란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 중 활용도가 낮은 땅에 서울시가 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민간토지 임차형 공공주택이다. ‘모아주택’은 소규모 필지를 보유하고 있는 토지주 4~6가구 정도가 함께 공동주택을 개발하는 소규모 재건축(500~3000㎡)인데, 이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오세훈 “박원순표 정책, 75%는 수정·폐기할 것”
반면 지난 10년여 동안 서울시 개발에 걸림돌이 됐던 ‘박원순표 정책’들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한강변 아파트 층고를 35층으로 제한하는 ‘35층 룰’을 만들고, 낡은 동네를 전면개발하는 대신 고쳐쓰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책은 설사 정치철학과 배치되더라도 가능한 존중하겠다”고 밝혔으나, 박원순 전 시장의 집권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며 비판해온 만큼 박원순표 정책은 수정·보완·폐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오 당선인에게 받은 공개질의 답변서에 따르면, 오 당선인은 박 전 시장이 10년 동안 추진해온 주요 정책 229개 중 22개는 폐기하고, 149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즉 박 전 시장이 내세웠던 정책들 중 75%(171개)가 바뀌거나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 중 오 당선인이 ‘반드시 철폐해야 할 정책’으로 꼽은 ‘벽화그리기’ 도시재생사업은 가장 먼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도 전면 재검토 대상에 오를 것으로 꼽힌다.
■서울시 VS 정부, 부동산 정책 전면 충돌 예상
한편 오 당선인이 부동산 관련 공약들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오 당선인은 민간주도 개발사업을 지지하는데, 이는 공공주도 개발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과 정면 충돌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있는 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 등 사업은 민간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강력하게 규제될 때 매력을 갖기 때문에, 앞으로 오 당선인과 정부가 부동산 정책 면에서 큰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다는 예측이 나온다. 서울시가 부동산 정책을 수정하려면 조례를 개정해야 하는데, 현재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체 109석 중 101석을 점유하고 있어 시의회 설득이 최대 관건이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시의회가 처음에는 오세훈 시장과 거리두기를 하겠지만, 이들도 지역구 민원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재건축 규제완화 등에 무조건 반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면서 도심 주택 공급의 가장 큰 채널인 재건축·재개발에서 민간 방식이 좀 더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과도한 기대감으로 시장이 과열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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