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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빵집 영업도 막더니…인사동의 뒤늦은 절규

    입력 : 2021.03.24 04:13

    [벼랑끝 상권] 외국인 최고 관광코스였던 인사동의 몰락

    [땅집고] 서울 종로구 인사동 상권에 속한 사거리코너 빌딩 1층이 비어있다. /전현희 기자

    [땅집고] 한국의 대표 전통 상권으로 외국인에게 최고 관광코스로 떠올랐던 서울 종로구 인사동 상권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1층 점포 3곳 중 한 곳이 문을 닫았고, 임대료도 2년 만에 3분의 1토막이 났다. 권리금은 사라진 지 오래다. 불과 2년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인사동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상인들은 2017년 이후 악재에 악재가 겹쳤다고 말한다. 계기는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다. 핵심 고객이던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며 그로기 상태로 몰린 것. 여기에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으로 외국인 발길이 완전히 끊기면서 K.O 펀치를 얻어맞았다.

    살아날 방법은 없을까. 상인들은 업종 제한을 풀어달라고 목을 맨다. 인사동에는 2002년부터 전통문화 보호 명목 아래 권장업종과 금지업종 규제가 있다. 무분별한 점포 확장을 막아 상권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취지였지만 관광객이 급감한 지금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 2019년 공실 전무…지금은 빈 점포만 21곳

    인사동은 1970년대 한옥에 한정식집 거리로 시작됐다. 한정식집 인근에 골동품점, 전통 공예품 등이 밀집해 서울 대표적인 전통 상권으로 자리잡았다. 한류 열풍이 불던 2000년대 후반 명동 거리와 함께 외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 중 하나였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에서 나와 90m 쯤 걸어가면 인사동 골목이 나온다. 초입부터 주한러시아문화원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인사동 메인 상권이다. 골동품·표구·화랑·공예품 등 전통문화 관련 가게가 대부분이다. 2년 전인 2019년 2월 네이버 거리뷰를 보면 이 거리에는 공실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땅집고] 네이버 거리뷰로 확인한 2019년과 2021년 인사동 일대 상가. /전현희 기자

    하지만 지난 16일 찾은 인사동 거리 곳곳에는 텅 빈 건물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인사동 사거리코너에 있던 한복 판매점은 작년 6월부터 비어있다. 바로 옆 전통과자 판매점 역시 문을 닫고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장 취재 결과, 인사동 문화의 거리 상권이 시작되는 공예품점 ‘성문당’에서 상권 출구인 ‘토독공방’까지 약 350m 거리에 총 40여개 건물 중 1층이 빈 건물만 13곳에 달했다. 흔히 가장 알짜라는 1층 점포가 3곳 중 한 곳꼴로 문을 닫은 셈이다.

    인사동 상권 핵심인 사거리 코너의 한 건물은 4개 점포 중 2개 텅 비어있었다. 갤러리, 전통 과자점, 한복 가게가 있던 건물이다. 실제로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회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인사동 메인 상권인 문화의 거리에 있는 전체 159개 점포 중 공실이 21개로 공실률이 13.2%에 달했다.

    인사동 일대 공인중개사무소들에 따르면 2019년 인사동 중심상권 1층 임대료는 59.4~66㎡(18~20평) 기준 2000만~2200만원에 달했다. 현재는 600만~700만원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한때 권리금만 1억~1억5000만에 달했지만 지금은 아예 사라졌다.

    [땅집고] 인사동에 오랫동안 공실로 방치된 1층 점포들. /전현희 기자

    ■ 업종 규제에 발목잡혀…외국인 빠지니 몰락

    잘 나갔던 인사동이 급격히 무너진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 감소만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전통 업종만을 대상으로 한 업종 규제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 정부는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인사동 일대를 2002년 전국 최초로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인사동 메인 상권 대상으로 그림·골동품·공예·표구·지필묵 등 5대 권장 업종을 정했다. 반면 프랜차이즈 음식점·유흥주점 등 수십 가지에 달하는 금지 업종도 지정했다. 권장업종이 들어서면 재산세 감면·융자지원 등 혜택을 주고, 금지업종은 과태료를 물렸다.

    [땅집고] 인사동 문화지구 권장업종과 금지업종.

    하지만 이 같은 업종 규제가 인사동 상권의 발목을 잡았다. 인사동 메인 상권 1층에는 일반음식점, 휴게음식점, 제과점조차 들어설 수 없다. 2층 이상에만 전통 찻집이나 제과점을 운영할 수 있다. 화장품 판매점, 만화 대여업, 안경점도 안된다. 인사동 메인 상권 바깥에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들어설 수 없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참 많을 때는 금지업종 규제가 유명무실했다.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에 따르면 2011년 비권장업소는 1273곳이었는데 2015년에는 1310곳으로 늘어났다. 과태료를 물더라도 돈이 된다는 이유로 화장품, 여성 의류매장 등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지자, 업종 규제가 인사동에 독(毒)이 됐다. 인사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상권을 활성화하고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대표 업종이 음식점이나 카페인데 인사동에는 한발짝도 들어오지 못했다”며 “그렇다고 그림이나 골동품 같은 권장 업종을 살릴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땅집고] 종로구 인사동 상권과 익선동 상권 위치. /전현희 기자

    ■ “음식점·카페도 안된다니…업종 제한 풀어야”

    인사동 상권이 몰락하는 동안 인근 익선동과 북촌, 서촌 등은 오히려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종로구 익선동은 한옥마을로 지정됐지만 인사동보다 규제가 느슨하다. 전통문화 관련 용품이나 한옥 체험 업종 등 권장용도를 지키면 건폐율을 완화하는 등 혜택을 준다. 음식점과 카페 입점을 허용하되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못 들어온다.

    인사동 주민들은 시대에 맞지 않는 문화지구 규제를 풀어달라고 정부와 서울시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익선동이 보여주듯이 전통을 살린 현대 점포로 유동 인구를 끌어들였으면 전통 문화업종으로도 손님이 옮겨가면서 정체성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전주한옥마을처럼 한옥이라는 전통 문화와 트렌드를 반영한 음식점이 어우러지는 상권도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안타깝다”며 “전통 보존을 위해 최소한만 남기고 업종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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