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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직원도 국회의원도 '가짜농부' 행세로 신나게 땅 쇼핑

    입력 : 2021.03.11 04:20

    [땅집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이 경기 광명·시흥신도시 토지를 매입하면서 허술한 농지법 규정의 빈틈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지법에 따라 농지는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만 취득할 수 있지만, 이 직원들은 단순히 묘목을 심는 것만으로 농지 취득 자격을 따냈다. 농지법을 강화해야 서류상으로만 농사를 짓는 ‘가짜 농부’들의 투기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땅집고] 지난 3일 오전 3기신도시로 지정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토지에 묘목이 심어져 있다. /장련성 기자
    농지법은 헌법의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따라 농사를 직접 짓는 농부만이 농지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한다. 예외적으로 1000㎡ 미만의 농지만 농부가 아닌 사람이 취득해 주말 농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이 농부이거나 농부가 될 예정이라는 의미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시·군·구·읍·면장에게 제출해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농업경영계획서’에는 그 농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농기계·장비·시설 확보 방안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이런 서류를 첨부해야 소유권 이전 등기가 가능하다.
    [땅집고]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절차./농어촌공사
    농지를 취득한 이후에도 농지를 직접 경작해야 한다. 고령이거나 병에 걸렸다거나 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농지를 임대하거나 위탁 경영할 수 없다. 농지를 위탁하거나 임대한 경우,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자기가 직접 영농하지 않은 것으로 적발된 토지는 1년 이내 처분해야 한다.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 광명·시흥에서도 농사를 짓겠다며 농지를 사 놓고 불법 전용하거나 방치한 ‘가짜 농부’가 한 해에도 수십 명씩 적발됐다. 광명시는 2019년 9월∼11월 농지 802필지(817명), 65만7762㎡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상 필지의 5.0%인 40필지(46명) 4만2653㎡가 목적과 달리 이용되는 것을 적발하고 농지처분 의무를 부과했다. 적발된 농지의 90% 이상은 경작하지 않고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형태로 이용한 불법 전용 사례였다.

    이번에 적발된 LH 직원들 역시 ‘가짜 농부’이지만 농지법에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광명시흥지구 묘목을 심고 영농계획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합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했다. 일부는 지난해 2월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필지 땅(5025㎡·밭)을 매입해 1200㎡ 내외의 4필지로 분할했다. 이후 농업경영계획서에 벼를 재배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왕버들 나무 묘목을 심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나무를 심음으로써 ‘농사를 직접, 계속 지어야 한다’는 규정을 손쉽게 피했다. 벼 농사나 밭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농작물을 관리해 줘야하지만 나무는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간다. 그래서 직접 농사를 짓는 것으로 꾸미기 쉽다. 서상하 블루인사이트 이사는 “담당 공무원이 실제 영농이나 대리 경작 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도록 돼 있지만, 묘목의 경우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농지법이 유명무실하다보니 고위 공직자와 국회 등에도 ‘가짜 농부’가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2월 공개한 ‘21대 국회의원 300명의 농지 소유 현황’ 자료를 보면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76명(25.3%)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소유한 농지 총면적은 약 39만9193㎡(약 12만968평)로 1인당 평균 5253㎡(약 1592평)다.

    농민단체 연대체인 ‘농민의길’은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불거진 투기 의혹의 근본 원인이 현행 농지법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행 농지법은 영농계획서만 제출하면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영농 사실을 추후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법이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면서 “정부는 농지 소유 실태 전수조사를 즉각 시행하고, 농민이 아닌 사람이 불법 소유 중인 농지를 매입해 농지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한상혁 땅집고 기자 hsang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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