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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꾼 입맛에 딱, 원주민은 죽을맛…대토 보상의 허점

    입력 : 2021.03.10 03:45

    [땅집고] 정부가 신도시 등 개발 예정지역 원주민을 위한 일종의 당근책으로 마련한 대토(代土) 보상이 정작 원주민에게는 철저하게 외면받고 투기꾼에게만 안성맞춤인 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 토지 소유주에게 제공하는 협의양도인 택지 역시 제도적 허점이 많아 투기꾼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이 경기도 광명시흥지구 토지를 매입한 이유도 대토 보상과 협의양도인 택지 같은 원주민을 위한 보상·지원 대책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땅집고] 지난 3일 오전 3기신도시로 지정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178-6, 7, 2, 3 토지에 묘목이 심어져 있다. /장련성 기자

    8일 국토교통부와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LH직원 10여명은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경기 시흥시 과림동과 무지내동 등지에서 1000㎡ 안팎 논과 밭 등을 10필지 매입했다. 매입 규모는 100억원 정도다. 김모씨 등 7명은 과림동의 한 필지(5025㎡·밭)을 매입해 1200㎡ 안팎의 4필지로 분할해 소유했다.

    이들은 신도시 택지가 수용될 것을 예상하고 땅을 매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1~2년간 광명시 일대 땅값이 20% 정도 올랐고, 지구지정 때까지 추가로 오를 것으로 보이는 만큼 토지를 비교적 최근에 매입한 이들도 취득가 대비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원주민 위한 대토(代土) 보상, 외지 투기세력에 안성맞춤

    통상 신도시 사업 등으로 땅이 수용되면 원주민들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토지 보상을 시세가 아닌 감정평가를 통해 받기 때문이다. 감정평가가격은 일반적으로 시세보다 낮게 책정된다.

    이런 점을 감안해 LH는 원주민의 재정착과 빠른 보상을 위해 당근책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대토 보상과 협의양도인 택지, 이주자 택지 등 3가지다. 모두 개발이 끝난 새 땅을 주는 것이다.

    대토 보상은 토지 소유주에게 현금 대신 개발이 끝난 새 땅으로 보상하는 제도다. 수용 시점에 현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개발이 끝난 후 주거용지나 상업용지 등을 각자 수용당한 토지 가치에 해당하는 만큼 배분한다.

    그러나 대토는 대부분 농민인 원주민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향후 땅값이 급등하면 보상받을 토지 면적이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는 탓이다. 또 개발 이익을 얻으려면 최소 3년 이상 걸린다. 신태수 지존 대표는 “보상받는 택지에 주택이나 상가를 지으려면 대출도 받아야 해서 농민들에게는 큰 매력이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2007~2020년까지 전국 87개 개발사업지구에서 풀린 토지보상금 52조원 중 대토 보상 비율은 5%(2조6000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현금 여력이 있는 외지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대토가 안성맞춤이다. 대토를 위해 기존 땅을 수용할 때 양도소득세 감면 비율이 40%에 달해 현금 보상(10%)보다 훨씬 높다. 큰 땅을 갖고 있으면 일부는 현금으로 받고, 일부는 대토로 받을 수도 있다. 대토 보상은 주로 해당 택지지구에서 나오는 단독주택용지나 근린생활용지 등으로 공급한다. 1층에 상가, 2~4층에 주택을 넣는 이른바 상가주택을 지으면 수억원대 차익을 거둘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땅집고] 대토 보상 제도 개요./LH

    대토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지구지정일 현재 주거지역 60㎡, 상업·공업지역 150㎡, 녹지지역 200㎡ 등 일정 규모 이상 땅을 갖고 있기만 하면 된다. 1년 이전부터 사업지구에 거주한 사람에게 1순위로 지급하지만, 선순위에서 모집이 미달되면 외지인에게도 대토 보상 기회가 돌아간다. 다만 1인당 한도가 있다. 예를 들면 지난 2월부터 보상에 들어간 경기 하남 교산지구의 경우 공동주택용지와 단독주택용지는 990㎡, 근린생활시설용지는 1000㎡까지만 돌아간다.

    이번에 문제가 된 LH 직원들 역시 시세 차익이나 토지 보상을 노린 단기 투자자였지만 원주민 신청이 부족할 경우 대토 보상 권한을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원주민 보호 차원에서 도입된 대토 제도가 이번에는 ‘공공 투기꾼’들의 타깃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름도 생소한 ‘협의양도인 택지’…1000㎡ 보유하면 누구나 가능

    LH 직원들이 택지를 1000㎡ 이상으로 분할해 취득한 것은 ‘협의양도인 택지’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협의양도인 택지는 보상과는 별개로, 시행자(LH)가 토지 소유자들의 신속한 주거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유인책으로 제공하는 이주·생활 대책의 하나다. 신도시 보상 등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용어조차 생소한 것으로, 보상 업무에 밝은 LH 직원이어서 가능했던 방식이라는 평가다.

    협의양도인 택지를 받을 자격이 되면 누구나 1세대 1필지에 한해 단독주택 용지를 감정가격(수도권 기준)에 우선 분양받을 수 있게 된다. ‘이주자 택지’와 비슷한데, 이주자 택지는 해당 지역에 실제 거주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권리라는 점이 다르다.

    [땅집고] 협의양도인 택지와 이주자 택지 제도 비교./LH

    협의양도인 택지는 지구지정일보다 하루라도 앞서 수도권 기준 1000㎡ 이상 토지를 보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격을 갖는다. 소유권 등기 이후부터 전매가 가능해 차익을 얻기 쉽다. 경기 시흥목감지구, 은계지구, 장현지구 등지에서 협의양도자 택지 시세가 분양가 2배 수준으로 뛴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특히 3기 신도시부터는 400㎡이상 토지를 보유했다면 해당 사업 지구에 지어지는 아파트도 우선 공급 받을 수도 있게 지침을 개정했다.

    ■ “대토·협의양도인 택지, 거주자만 받도록 해야”

    전문가들은 토지 수용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원주민을 위한 보상 체계가 외지인 투자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적용되는 점이 이번 사태를 부른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대토 보상의 경우, 원주민을 위한 제도가 정작 원주민에게는 외면받고 오히려 투기세력에게 유리하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협의양도인 택지도 지구지정일 하루 전에만 땅을 사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투기 조장 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신도시 원주민 보호 취지에 맞춰 거주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 대표는 “보유한 지 얼마 안 된 투자자에게는 인센티브 혜택을 대폭 줄여야 투기를 막을 수 있다”며 “특히 대토 보상과 협의양도자 택지의 경우 토지 보유 기간이 짧은 외지인은 제외하고 오래 거주한 원주민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 hsang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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