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3.07 04:07
[땅집고] 3기신도시 지정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경기도 광명시흥지구 땅을 미리 매입한 의혹을 받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해당 토지에 묘목을 심어둔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뿐 아니라 신도시 보상비만을 노리고 토지를 매입한 경우 나무를 심는 일은 흔하다. 도대체 토지 보상과 나무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지난 4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LH 직원들은 지난해 2월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필지 땅(5025㎡·밭)을 매입해 1200㎡ 내외의 4필지로 분할했다. 그 중 3필지에는 편백나무 묘목을 급하게 심은 정황이 발견됐다. 현지 주민들은 “지난해 봄부터 나무를 여러 그루 심고 갔다”, “조경업체 직원이 찾아와 묘목 2000여 그루를 심었다”고 말했다.
현행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택지개발예정지구에서 토지주에게 보상을 할 때 땅 이외에도 건축물·수목·농작물·묘지 등 각종 지장물(땅에 있는 물건 중 수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보상비를 지급한다. 나무 묘목을 심은 경우 먼저 이식이 가능한지를 따져 이식이 가능하다면 이식 비용만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식할 수 없다고 평가하면 감정평가사 평가에 따라 묘목의 현재 가치나 기르는 데 들어간 비용 정도를 보상하게 돼 있다.
따라서 해당 LH직원들이 2000그루의 편백나무 묘목을 급히 심어 놓았다고 해서 거액의 보상비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9년 경북 구미하이테크밸리 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한 토지주는 3년간 기른 벚나무 40그루에 대한 보상비로 32만원을 받았다.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보상 규모가 큰 편이 아니었다.
신태수 지존 대표는 토지 투기 과정에서 나무를 심는 이유에 대해 “거액의 보상비를 노린 행위라기보다는 농지법 위반을 회피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며 “논이나 밭농사를 짓는 것보다 묘목을 심는 게 관리하기에도 편하다”고 말했다. 현행 농지법상 논·밭·과수원 등 농지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따라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농지법 제58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 위례엔 벌통 8000개, 하남에선 닭·오리 등 2000마리 나와
신도시 개발 예정지 토지 보상에서는 보상비를 더 받거나 농지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 농업·축산업 등 다양한 영업 행위를 하기도 한다.
신도시 예정 지역에서 무단으로 가축을 기른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토지보상법상 축산업 손실 보상 기준에 따르면 닭 200마리, 토끼 150마리, 오리 50마리, 돼지 20마리, 소 5마리, 사슴 15마리, 염소·양 20마리, 꿀벌 20군을 기르면 땅값과 함께 손실비와 이전비 등을 보상받을 수 있다.
2010년 위례신도시 토지보상이 이뤄질 당시 사업시행자였던 LH는 위례신도시에서 투기 목적의 비닐하우스 1700여동, 무단으로 반입한 벌통 8000여개를 적발했다. 미사·감일·감북지구 등에서도 토지보상을 노린 770건의 불법 설치물과 닭 921마리, 개 640마리, 오리 504마리 등을 적발했다.
■ 토지 1000㎡ 내외로 분할…‘대토보상’ 노렸을 가능성
LH직원들이 이른바 ‘지분 쪼개기’ 수법을 통해 각각 1000㎡를 겨우 넘는 땅을 보유한 것은 대토 보상을 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들이 각각 보유한 토지 면적은 대토(代土) 보상을 받기 위한 요건을 충족한다. 대토보상은 각종 공공사업에 편입되는 토지에 대한 보상금을 현금 대신 해당 택지지구 내 토지(주택·상업 용지)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때 아무리 큰 땅을 보유해도 대토보상은 약 1100㎡ 이내 주거용지 또는 주상복합용지만 받을 수 있다. 1100 ㎡가 넘는 필지의 경우 대토보상 방식이 불리할 수 있다.
서상하 블루인사이트 이사는 “투기 행위로 보상비가 늘면 분양원가가 올라 저렴한 아파트를 공급하기 어려워진다”며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야할 LH직원들이 투기꾼 수법을 그대로 따라 보상비를 높이려 했다는 점 때문에 국민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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