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2.22 05:07
[땅집고] 직장인 A씨는 최근 10년 전세살이를 끝내고, 서울 광진구 중곡동 다세대주택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2·4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면서 A씨는 계획을 접었다. 중곡동 일대가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 후보지로 꼽힌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 그는 “자칫 집을 샀다가 무주택자 자격만 사라지고, 나중에 재개발이 되더라도 아파트는 못 받는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했다.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방안으로 야심차게 제시한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 후폭풍이 거세다. 사실상 서울 빌라 시장이 마비됐다. 정부가 지난 4일 대책 발표일 이후 집을 사면 재개발 후 아파트 우선 공급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공공직접시행 유력 후보지로 꼽히는 곳들은 정책 발표와 동시에 거래가 끊겼다. 서울 용산구 후암1특별계획구역과 광진구 중곡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정부 정책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금 받고 나가라니”…예측 불가에 시장 혼란
주택 시장에선 공공 정비사업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집을 산 수요자까지 일괄적으로 현금 청산하겠다는 것은 기존 재개발·재건축과 비교해도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어떤 곳이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에 포함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도 문제다. 이렇다보니 신축 아파트를 구매할 여력이 없어 오래된 아파트나 단독·다세대주택을 사려는 실수요자도 선뜻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존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투기 수요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시점 이후 기존 주택을 취득하는 경우 조합원 분양권을 받지 못하는 제한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재건축의 경우 2017년 8·2 대책에 따라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조합설립승인일 이후에는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가 불가능하다. 재건축에 투자하려면 조합설립 이전 아파트를 찾아야 한다.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 승인일 이후 토지나 집을 매입하면 조합원 분양 자격을 얻을 수 없다. 재건축과 재개발 모두 정비구역지정 때부터 토지 일부나 다주택을 처분해 조합원 자격을 나누는 ‘지분 쪼개기’도 금지하고 있다.
■“예정지구지정 등 예측 가능한 시점부터 막았어야”
공공 정비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곳도 있다. 공공 정비사업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자칫 거래 절벽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예 “우리 동네는 공공 정비사업을 신청도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집을 사고 팔아도 된다”고 공개 선언을 하는 식이다. 실제 서울 광진구 중곡아파트는 지난 11일 주민 대상 설문조사 끝에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을 완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재개발·재건축을 추진 중인 지역 대부분이 중곡아파트처럼 공공직접시행 배제를 못 박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민간사업으로 진행해도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들과 양천구 목동 일대 아파트들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투기 방지를 위해 우선 공급권을 제한하더라도 최소한 기존 정비사업처럼 지구지정이 이뤄진 이후이거나 사업변경신청 시점 정도로 한정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선 공급권 배제는 재산권 침해여서 투기 우려가 있는 대상으로 한정해야 하는데 모든 곳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투기 우려가 없는 곳까지 거래를 정지시키는 게 문제”라며 “지구지정 이후 매입한 경우에만 현금 청산하도록 해도 투기 방지 효과는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현금 청산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홍남기 부총리는 “현금청산은 헌법상 정당하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이후 내놓은 첫 부동산 대책부터 반(反)시장적으로 흘러가자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은 장관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지난 4년간 정부 정책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 누적돼 있는데, 이번에 나온 정책도 시간이 지날수록 반응이 싸늘해지고 있다”며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사업 추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고, 이번 정책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면 ‘우리는 공공 정비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지역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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