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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권 사서 들어간 새 아파트, 졸지에 쫓겨날 판"

    입력 : 2021.02.19 03:53

    [땅집고] 2016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자이’ 아파트 분양권을 매수한 A씨. 낡은 아파트에 10여 년을 살다가, 청약 당첨자로부터 분양권을 매입해 어렵게 새 아파트에 들어갔다. 그는 2019년 11월 입주해 1년 간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 아파트 분양권 매수자가 부정 청약자로 드러나면서 A씨의 분양권 매입까지 무효화한다는 것. 아파트 시행사 측은 A씨에게 “부적격 당첨으로 분양권 공급 계약이 취소됐기 때문에 전매계약도 무효”라며 “분양권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땅집고] 청와대 청원. / 청와대 청원 게시판

    부산경찰청은 2016년 이 아파트 258가구 일반청약 당시 브로커를 낀 50여명이 특별·일반 공급에서 위장 결혼하거나 허위 임신 진단서·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위조해 최대 4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사실을 적발해 최근 검찰에 넘겼다. 이 아파트에는 A씨처럼 불법 분양권 전매 피해자들이 41명에 달하고, 이 중 36가구가 A씨처럼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A씨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과 아파트 시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최근 아파트 부정청약 단속 강화 여파로 멀쩡하게 제값주고 분양권을 샀던 수요자들이 좌불안석이다. 자신이 산 분양권이 부정 청약으로 계약 취소될 경우, 자칫하면 집을 잃고 쫓겨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해운대 ‘마린시티’처럼 최초 분양 계약자가 부정 당첨으로 계약 취소되면서 분양권 매입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아크로리버하임’ 아파트에서도 A씨처럼 부정 당첨자 분양권인줄 몰랐던 피해자들이 5명 발생해 계약 취소 위기에 처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상반기 분양 단지 대상으로 조사한 부정청약 의심사례 200건을 적발했다. 업계에서는 부정 청약 단속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부정 청약 여부를 알지 못하고 분양권을 매수한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부정 당첨자 분양권 매수 구제 방안은 없어

    [땅집고] 공급질서 교란금지에 대한 주택법 내용. / 주택법

    주택법 제65조(공급질서 교란 금지)에 따르면 부정한 방법으로 주택을 공급받은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 또는 사업주체가 이미 체결된 주택의 공급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 당첨된 계약자가 분양권을 제3자에게 전매했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부정청약은 적발되더라도 대부분 벌금을 내는 선에서 그쳤고 주택공급 계약이 취소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미 주택이 분양됐기에 계약 자체를 취소하는 것은 과하고 지금처럼 이를 모르고 분양권을 구입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부가 2018년 9·13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부정 청약자에 대한 공급계약 취소를 의무화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분양권 전매자들의 계약도 일괄 해지하도록 했고 시행사들도 계약 취소를 강행했다.

    이에 따라 부정 청약을 알지 못하고 분양권을 매입했다가 전매 계약이 취소되는 선의의 피해자가 잇따르고 있다. 이 경우 통상 시행사로부터 분양대금만 돌려받고 집을 빼앗긴다. 문제는 최근 부동산 정책 실패로 전국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 불과 1~2년새 아파트 값이 수억원씩 급등해 분양권 매수자의 경우 계약이 취소되면 순식간에 수억 원대 손실을 보게 된다.

    문제가 확산되자, 국토부도 다시 입장을 바꿨다. 시행사에게 “불법 청약 조사 과정에서 해당 분양권을 모르고 매수한 선의의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부정 당첨자를 제외하고 계약을 유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권고에 그칠 뿐 강제 규정은 아니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집값이 크게 오른만큼 시행사는 계약을 취소하고 시세대로 다시 매각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했다.

    ■ “선의의 피해 막으려면 사전 검증 강화해야”

    현행 법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국토부와 국회·사법부는 각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국토부는 지난달 22일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계약취소 후 나온 재분양 물량 가격을 원분양가 수준에 공급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행사가 선의의 피해자들에게 계약 취소를 강행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땅집고] 부산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의 모습./ 조선DB

    피해자들은 현행 주택법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2019년 6월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자이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고등법원에 주택법 제65조2항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선의의 피해자 보호 규정을 두지 않아 피해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등 사유재산 원리에 위반된다는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한 심리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무엇보다 청약 사전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청약 당시부터 사전 검증을 강화해 시행사에게도 강한 책임을 부여해 부정 청약자가 애초에 나올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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