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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실 완판' 무색하게 텅텅…입주민은 "조직 분양에 뒤통수"

    입력 : 2021.01.12 03:24

    [땅집고] 충남 서산 성연면 오사리에 위치한 '이안큐브 오피스텔'. 주변에 언덕과 논밭만 있는 이른바 나홀로 오피스텔이다. /네이버거리뷰

    [땅집고] 지난 10일 오후 충남 서산시 성연면. 서산시청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 대산항 방면으로 10분 정도 이동하자 산과 논밭으로 이어진 농촌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서산테크노밸리로 들어가는 초입이었다. 멀리 아파트 단지와 함께 논밭 한가운데 우뚝 솟은 18층짜리 건물이 나타났다. 이 건물은 2019년 7월 준공한 ‘이안큐브 서산테크노밸리’다. 오피스텔 1009실과 상가 94실로 구성된 서산시 최대 규모의 오피스텔이다.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초대형이다. 분양 당시 이 오피스텔은 “완공만 되면 서산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다. 준공 직전인 2019년 봄에는 “100% 분양이 끝났다”며 완판 기념 이벤트도 열었다.

    그러나 이 오피스텔은 완공 1년 반 만에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오피스텔 1009실 중 고작 210실만 입주했다. 나머지는 텅텅 비었다. 뿐만 아니다. 준공 이후 400명이 넘는 계약자가 무더기로 계약을 해지했다. 300명이 넘는 계약자는 중도금과 잔금 납부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상가도 94실 중 딱 한 곳만 공인중개사사무소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이다. 그 흔한 편의점도 하나 없다. 현장에서 만난 한 입주자는 “유령 건물에 사는 느낌”이라며 “가능하다면 계약을 취소하고 빨리 이 건물에서 나가고 싶다”고 했다.

    오피스텔 시행사인 유림디앤씨는 작년 10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시공사인 대우산업개발은 공사대금 200억원(이자 포함)을 떼였고, 시행사 대표 유모씨를 사기 분양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현재 충남지방경찰청이 이 사건을 수사 중이다. 분양률이 높다는 말을 믿고 계약했던 계약자 수백명은 졸지에 유령 오피스텔 주인으로 남게 됐다. 서산의 초대형 오피스텔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땅집고가 취재했다.

    [땅집고] 2016년 9월 분양 당시 '이안큐브오피스텔'을 소개하는 홍보 자료에 나와있는 오피스텔 위치도. /손희문 기자

    ■ 초기 분양에 실패…조직분양 후 거짓말처럼 ‘완판’

    이 오피스텔 분양이 시작된 건 2016년 9월. 당시만 해도 오피스텔 사업지 인근 서산테크노밸리에선 200여개 기업, 1만8000여명의 근로자가 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인근 대산항에서 중국 산둥성 롱옌항(龍眼港)을 오가는 국제여객선이 취항한다는 호재도 있었다. 서산의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서산시 인구와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과도하게 큰 오피스텔이었지만, 분양 당시에는 완공만 하면 서산시를 대표하는 건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초기 분양 성적은 처참했다. 분양 개시 후 두 달간 계약률은 7%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분양이 힘들게 되자, 시행사는 같은해 12월부터 분양대행사와 함께 소위 ‘조직 분양’을 시작했다. 조직 분양이란 높은 분양 대행 수수료를 내걸고 영업 사원들을 이른바 ‘점조직’ 방식으로 운영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양 계약을 이끌어내는 분양 마케팅 방식이다. 분양가 1억3000만여원 오피스텔 1개실을 팔면 주는 대행 수수료가 당초 300만원이었지만, 조직분양이 시작되면서 1500만원까지 올라갔다. 조직분양이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계약률이 쑥쑥 올라갔다. 2년 뒤 준공 무렵에는 거의 ‘완판’ 수준에 이르렀다.

    [땅집고] 2019년 5월 당시 '이안큐브오피스텔' 분양 완판을 홍보하는 내용의 전단.

    ■ 시공사 “시행사가 허위 계약으로 중도금 대출받아 빼돌렸다”

    계약률은 높아졌지만, 문제는 공사가 진행되는 사이 주변 호재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는 점이다. 1만8000명이 올 것이라는 서산 테크노밸리 기업 유치가 저조하면서 실제 근무자는 1100명 정도로 뚝 떨어졌다. 예상 근무 인원의 6% 수준이다. 사드(THAAD) 사태 등의 영향으로 대산항에 취항한다던 국제여객선 사업도 무산됐다. 주변 사업이 모두 무산되자, 임차인 모집이 어렵게 됐다.

    그러자 계약자들이 작년 하반기부터 잔금 납부를 거부하며 무더기로 계약해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시행사인 유림디앤씨는 지난해 11월 444명의 무더기 계약해지 요청을 일괄적으로 받아줬다. 통상 시행사가 중도금 대출 이자까지 내 준 사업 현장에서 수백 명의 계약해지를 한꺼번에 받아주는 사례는 거의 없다.

    시공사인 대우산업개발 측은 “통상 분양 계약률이 50%를 넘어야 금융권에서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초기 분양에 실패하자 시행사인 유림디앤씨가 분양대행사와 짜고 1인당 300만원씩 주고 명의만 빌려 허위계약 수백건을 만들어냈다”며 “이렇게 중도금 대출을 받은 돈을 빼 돌리고, 공사대금은 지급하지 않은 채 고의로 부도를 냈다”고 주장했다. 대우산업개발 측은 이어 “시행사가 무더기 계약해지 요구를 받아준 것도 애초부터 명의만 빌린 허위계약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이 오피스텔 계약자 A씨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모델하우스에서 ‘100억대 부자라는 허모씨가 오피스텔 200여채로 임대사업을 하려는데, 등기 나올 때까지만 타인 명의가 필요하다’고 해 명의만 빌려줬다”고 말했다. 시행사가 무더기 계약해지를 해 준 상태에서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자, 시공사는 공사비 200억원을 떼인 것은 물론 연대보증 채무 수백억원도 떠안게 됐다.

    [땅집고] 이 오피스텔은 대부분이 비어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입주세대'라는 글씨가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손희문 기자

    ■ 시행사 “조직분양은 어디서나 있는 일…나도 피해자”

    그러나 시행사인 유림디앤씨 유모 대표는 “사기 분양을 할 이유도 없고, 나도 피해자”라며 “높은 수수료를 주고 조직분양을 하는 것은 분양 시장의 일반적인 마케팅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명의만 빌려줬다’는 계약자 주장에 대해 “중도금 연체로 압박을 받아 불만이 생긴 계약자에게 시공사가 ‘분양 대행사가 억지로 분양받도록 한 것 아니냐’고 물어보니 일부 계약자들이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440명에 대해 일괄 계약해지를 받아 준 것에 대해서도 “건물이 이미 준공돼 담보대출을 받아 중도금 대출을 갚을 수 있고, 계약 해지분은 다시 분양하면 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땅집고] 충남 서산 '이안큐브' 오피스텔 주요 일지. /이지은 기자

    서산이안큐브 오피스텔 사업 실패로 시행사는 지난 10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고 유씨는 개인재산이 가압류됐다. 그러나 유씨는 이미 다른 시행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고급 오피스텔 분양 사업을 벌였다. 이 사업에는 대형 건설사인 롯데건설이 시공사로 나섰고, 오피스텔 분양에 크게 성공해 현재 상가를 팔고 있다.

    시공사와 시행사의 분쟁은 경찰 수사 등을 통해 해결이 되겠지만, 정상적으로 오피스텔을 분양 받은 계약자들만 선의의 피해자로 남게 됐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조직분양이 시작되면 영업조직은 무차별 전화 마케팅은 물론 친인척까지 동원해 계약률을 높이기도 한다”며 “갑자기 계약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만 믿고 계약했다가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 서산=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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