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2.31 04:37
[악몽이 된 도시재생] ③ "불났는데 소방차도 못 들어갔어요" 죽어도 개발 못하는 동네
[땅집고] “오늘 완구시장에서 불이 났는데 도로가 너무 좁아서 소방차가 현장까지 못 들어와 발을 동동 굴렀어요. 동네 환경이 이 지경인데 도시재생사업하겠다고 해서 개발도 안 되고…. 결국 주민들만 고통받는 거죠.”(서울 종로구 창신동 주민 한모씨)
30일 오전 9시55분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종합시장 골목 A건물에서 불이 났다. 화재를 발견한 주민들이 즉시 신고했고 소방차가 곧장 출동했지만, 막상 불이 난 현장까지 진입하지 못했다. 골목을 따라 소규모 문구·완구점과 소품점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도로 폭이 성인 3~4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로 너무 좁아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었던 것.
다행히 소방 호스를 이용해 화재는 25분만에 꺼졌고, 인명 피해도 없었지만 창신동 주민들은 “더는 못 참겠다”면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할 정도로 낙후된 곳이어서 개발이 당장 시급한데, 도시재생구역으로 묶여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SH사장으로 재직하던 2014~2017년 ‘고쳐서 다시 쓰는 도시’를 표방하며 도입한 제도다. 그동안 창신동 도시재생사업에만 900억원이 쓰였지만, 지금까지 성과라곤 노후 주택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거나 주민들이 찾지도 않는 박물관 등 건물을 짓는 데 그친다.
강대선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은 “지난번에도 사무실 앞에 불이 난 적이 있는데, 소방대원이 너무 힘들어하면서 ‘여기는 대체 언제 개발되느냐’고 묻는 일도 있었다”면서 “서울시가 도시재생으로 지정된 동네에서는 재개발 같은 정비사업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은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환경 개선에 대한 희망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거 환경이 계속 악화되자 창신동을 비롯한 서울시내 도시재생구역 주민들은 “구역 지정을 해제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고 있다. 구로구 가리봉동5구역(주민 동의율 30%), 용산구 서계동(24%), 종로구 창신동(31%), 종로구 숭인동(53%) 등 일부 구역은 주민 동의를 받아 올 하반기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 공모에 신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와 일선 구청은 “도시재생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공공재개발 사업지로 신청할 수 없다. 예산을 중복 집행할 수 없으며, 정책 일관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서류 접수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재생지역 주민들은 이 같은 서울시 방침에 대응해 ‘도시재생구역 해제 연대’를 결성하고, 주민들에게 구역해제 서명을 받고 있다. 지난달 창신동과 숭인동은 도시재생구역이라는 이유로 공공재개발 후보지 공모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부당하다며 서울시에 행정심판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민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종로구청이 서울시행정심판위원회에 창신동이 청구했던 행정심판 기각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책기조를 고려하면 서울시행정심판위원회는 종로구청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주민 의견 수렴 없이 관주도로 엉뚱한 데 돈을 쓰다보니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주민들 불만이 넘쳐나는 것”이라며 “(도시재생사업이) 이미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사업을 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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