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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반대 깡그리 무시하고 도시재생…동네만 작살났다"

    입력 : 2020.12.17 04:37

    [악몽이 된 도시재생] ① 주민 동의 받았다지만…"우린 그런 적 없다" 분노

    [땅집고] 2016년 서울시가 진행한 도시재생 주민 공청회에서 '도시재생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용산구 서계동 주민 30여명. /서울 용산구 서계동 주민 제공

    [땅집고] “4년 전 서울시에서 도시재생구역 지정 전에 주민공청회를 연다고 해서 동네에서 난리가 났어요. 주민 서른 명 정도가 ‘도시재생 반대한다’ 구호까지 외치면서 반대 시위를 했어요. 그래도 이듬해 동네가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돼 버렸습니다. 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요.” (서울 용산구 서계동 주민)

    최근 서울 도시재생구역으로 지정된 동네들의 불만이 치솟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는 SH사장(2014~2017) 시절 ‘고쳐서 다시 쓰는 도시’를 지향하는 ‘서울형 도시재생’을 도입했다. 변 내정자가 도입한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결과물이 어떤지는 현장만 가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땅집고] 서울 관악구 난곡동 담벼락에 빛 바랜 벽화들이 남아 있다. /전현희 기자


    땅집고는 지난해 서울시가 ‘도시재생 우수 사례’로 꼽은 서울 관악구 난곡동을 찾았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가파르게 올라가는 골목길로 시작됐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에도 비좁은 골목을 따라 금이 죽죽 간 벽돌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한 2층짜리 주택은 외벽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대문조차 없었다. 담장에는 원래 페인트 색깔을 알 수 조차 없게 빛 바랜 벽화들만 남아 있었다. 썩어 가는 동네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것은 도시 재생사업의 트레이드 마크다. 동네 풍경이 30~40년 전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난곡동 도시재생 사업에 투입된 돈이 196억원이다.

    [땅집고] '서울 도시재생 1호' 사업지인 종로구 창신동의 한 주택 화장실. /땅집고 유튜브 캡쳐

    ‘서울 도시재생 1호’로 지정된 종로구 창신동은 총 900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대형 도시재생 사업지다.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가로등·CCTV 정도만 설치됐을 뿐 길이 좁아 소방차·구급차 진입조차 어렵다. 이곳 주민 장윤철씨는 “우리는 도시재생 사업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내왔다. 주민들 피부로 와닿는 것(변화)은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서울시 도시재생실 재생정책과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지는 총 47곳이다. 이 중 주거지를 포함하는 구역은 ▲근린재생 일반근린형 21곳 ▲근린재생 주거지지원형 6곳 등 총 27곳이다. 이들 지역의 상황이 대부분 비슷하다.

    [땅집고]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도시재생구역으로 지정하는 데 주민들 동의율 충족 등과 관련한 요건은 없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문제는 서울시가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 의사와 관계 없이 추진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도시재생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하지 않았다”, “도시재생이 뭔지도 모르는데, 알고 보니 우리 동네가 도시재생지역이다”, “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되는 순간 그 동네는 끝장난다”는 등 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기 전 주민 공청회를 개최하기 때문에, 주민들과 충분히 소통한 후 구역 지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참석하지도 않는 공청회가 무슨 소용이냐는 반박이 나온다. 구로구의 도시재생지역인 구로1구역의 한 주민은 “공청회를 하기는 했는데, 전체 주민 600여명 중에 서른명 정도 참석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용산구 서계동이 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될 때에도 주민 1240여명 중 30여명만 참석했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서계동 주민 A씨는 “공청회에 참석한 30명도 현장에서 반대 시위를 하느라 참석한 것인데, 난데없이 도시재생구역으로 묶여버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도시재생구역을 지정할 때 법적으로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한번 지정된 이상 구역 해제를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다. 서울시 도시재생과 이주연 주무관은 “도시재생특별법에 따라 3가지 기준(인구감소도·사업체수감소도·노후주택비율) 중 2가지 이상을 충족하는 경우라면 (도시재생) 구역 지정할 수 있다”라고 했다. 구역 지정도 주민 동의 요건은 없다.

    [땅집고] 지난해 우수 도시재생 사례로 꼽힌 서울 관악구 난곡동. 건물 외벽에 금이 가고 대문 조차 없는 2층 주택이 눈에 띈다. /전현희 기자

    서울 도시재생사업은 숨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변창흠 국토부 장관 내정자가 SH서울주택공사 사장 재직 시설에 주도했다. 변 사장이 SH에 취임한 직후인 2015년 3월 ‘시민과 함께하는 SH 공사 혁신약정서’를 발표했다. 이 약정서에서 변 사장은 SH가 “위험하고 열악한 주거지역을 정비하고, 뉴타운 해제지역에는 주민자발적인 소규모 주거재생사업이 확산될 수 있도록 선도투자하고 주민들을 지원하는 등 뉴타운 대안사업의 총괄실행자 역할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주민자발적’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었고, 결과는 처참하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주민 의견 수렴 없이 관주도로 엉뚱한 데 돈을 쓰다보니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불만이 넘쳐나고, 결과는 처참한 것”이라며 “관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이 이미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실패를 인정하고 사업을 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전현희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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