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2.13 10:23
[땅집고] 서울 은평구 다세대주택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A씨. 이번 정부 들어 집값 상승세가 멈출 기미가 안 보이자, 더 늦기 전에 보금자리론과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후 신용대출까지 보태 노원구에 있는 낡은 아파트라도 한 채 사야겠다고 맘먹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부터 정부가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시행하면서 A씨의 내 집 마련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A씨가 봐뒀던 노원구 주택을 사려면 1억원 정도 신용대출을 받아야 했는데, 이번 정책으로 대출 금액이 최대 4000만원으로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A씨는 “주변 친구, 직장 동료들이 집 사서 몇억원씩 올랐다는 말에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면서 “정말 이 돈, 저 돈 다 끌어서 ‘영끌’라도 아파트를 사야 할 것 같은데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30일부터 새로운 신용대출 규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연 소득 8000만원이 넘으면 1억원 초과 신용대출을 받을 경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한도를 40%로 규제 ▲신용대출로 1억원 넘게 돈을 빌린 후 규제지역에서 집을 사면 즉시 빌린 돈을 회수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번 대책이 대출 규제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부동산 규제책이나 다름 없다고 본다. 최근 대출금을 끌어모아 주택을 매수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 쓴다는 뜻)’족이 늘어나면서 신용대출 잔액이 급증하자, 정부가 신용대출이 부동산자금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는 ‘영끌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땅집고가 사실상 영끌 금지령 주요 내용을 살펴봤다.
■연봉 8000만원 넘으면 DSR 40%로 규제
먼저 연소득 8000만원이 넘는 직장인나 자영업자가 신용대출로 1억원 넘게 빌릴 경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한도를 40%로 규제한다. DSR이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로, 개인의 대출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지금까지는 특수한 경우에만 차주(借主·빌린 사람) 단위로 DSR을 규제했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기존 신용대출까지 포함해 은행 40%, 비은행 60%로 한도를 정하는 경우다.
하지만 앞으로는 주택담보대출 없이 1억원 초과 신용대출을 받을 때도 차주 단위로 DSR 한도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연소득이 8000만원이라면 1년에 갚아야 할 대출 원금과 이자를 합해 3200만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즉 대출 상환능력이 있는데도 더 빌릴 수 없도록 막겠다는 얘기다.
다만 이미 신용대출을 받았다면 해당 대출 만기를 연장할 경우 DSR 40%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기존 대출의 기한을 연장하거나, 금리·만기 조건만 변경해 재약정하는 경우라면 기존 대출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책 발표 직전인 지난달 12일 5대 은행 신용대출 잔액이 131조354억원으로, 1주일새 1조5053억원 폭증하기도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주로 30~40대 고객이었다”면서 “집 살 돈을 구할 방법이 계속 줄기 때문에 대출이 막히기전 막차 수요가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차주 단위 DSR 40% 적용 대상에서 분양주택 중도금 대출, 재건축·재개발 주택 이주비 대출, 추가 분담금에 대한 중도금 대출, 분양 오피스텔 중도금 대출, 서민금융상품, 전세자금대출 등은 제외된다. 마이너스통장같은 한도 대출의 경우 실제 사용 금액이 아니어서 금융회사와 약정 당시 설정한 금액을 대출 총액으로 간주하고 규제를 적용한다.
■신용대출 1억 초과 후 규제지역 주택 사면 대출 회수
이번 대책은 규제 시행일 이후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은 후, 1년 안에 서울 등 규제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을 매입하면 대출금을 약 2주 안에 회수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때 규제 이전에 받은 대출금은 회수하지 않지만, 신용대출 총액에는 포함한다. 예를 들어 지난 10월 8000만원 신용대출을 받았던 차주가 이달에 추가로 3000만원을 대출받아 서울 아파트를 구입한다면, 즉시 3000만원을 회수하는 식이다.
이번 규제는 부부합산이 아닌 개인 차주별로 적용한다. 예컨대 부부가 각자 9500만원씩 신용대출을 받아 1년 안에 규제지역 주택을 구입한다면 대출금 회수를 피할 수 있다. 제도 시행 후 신용대출 한도를 늘려 1억원을 초과한 경우라면, ‘1년 내 규제지역 주택을 살 경우 해당 신용대출을 회수한다’는 약정을 맺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신용대출 규제가 서울 고가아파트 매수세를 완화하는 데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매수 여력이 있는 수요자라면 굳이 신용대출로 1억원을 충당하지 않아도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출 규제 타깃은 ‘신용대출 사다리’까지 끌어 쓰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한 서민들인 셈이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서울 핵심 입지에 집을 구매하는 수요자라면 1억원 대출이 절박하지 않다”면서 “주로 수도권 외곽 등 가격이 저렴한 지역에서 주택을 구하는 실수요자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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