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2.09 04:43
[땅집고] 지난 7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지하철 서면역 2번 출구를 빠져나와 전포동 방면으로 걸어가자 신축 아파트들이 보였다. 부전동 일대 아파트는 서면1번가와 전포동 카페거리 등 번화가와 가까워 부산진구에서 몸값이 가장 높다. 정부가 지난달 19일 해운대 등 일부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이후, 규제에서 빠진 부전동 일대 아파트값이 연일 뛰고 있다. ‘서면 더샵센트럴스타’ 125㎡(이하 전용면적)은 한 달 전만 해도 5억9900만원에 거래됐지만, 지난달 20일 8억원에 팔렸다. 규제 발표 이틀 만에 2억원이 급등했다. 부전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규제에서 빠지자, 투자 문의가 몰리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수영구 상황은 180도 달랐다. 남천동의 다비치공인중개사사무소 신민경 대표는 “11월 말 이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라고 했다. 남천동 ‘코오롱 하늘채 골든비치’ 102㎡는 지난달 7일 12억5000만원(17층)에 최고가를 찍었는데 조정대상지역 지정 이후 매수 문의가 완전히 끊겼다. 신 대표는 “규제가 없었던 지난 1년 동안 아파트 매매가격이 딱 두 배 올랐다”면서 “두더지 잡기 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정부가 지난달 20일 해운대·수영·동래·연제·남구 등 5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이후 부산 아파트 시장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올해 집값이 폭등했던 ‘해·수·동(해운대·수영·동구)’은 거래가 꽁꽁 얼어붙었다. 반면 이전까지 잠잠했던 지역은 집값이 들썩거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규제 강화와 완화가 자주 반복되면서 부산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자 민심도 들끓고 있다.
■ 규제의 역설…“이제는 안오르는 곳이 없다”
부산 해·수·동은 지난해 11월 조정대상지역에서 풀렸다. 이후 올 6·17 대책에서도 가까스로 규제 지역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넉달 여 만에 아파트 값이 2억~3억원 정도 올랐다. 부산의 ‘은마 아파트’로 불리는 수영구 남천동 ‘삼익비치’ 85㎡는 지난달 13일 15억5000만원으로 신고가를 경신했다. 4개월 전보다 2억5000만원 올랐다. 해운대구 우동 ‘대우마리나 1차’ 85㎡ 역시 올 6월 8억9000만원(3층)에서 10월에는 12억9000만원(5층)으로 뛰어 최고가를 기록했다. 해·수·동 곳곳에서 전용 84㎡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인 10억원을 넘어서는 단지가 속출했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이 지역들이 약 1년 만에 다시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자, 나머지 지역이 바통을 이어받는 모습이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규제지역으로 묶인 곳은 아파트값 상승세가 확연하게 꺾였다. 11월 마지막주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이 ▲해운대구(0.62%→0.32%) ▲수영구(0.43%→0.33%) ▲동래구(0.56%→0.35%) ▲연제구(0.47%→0.29%) ▲남구(0.74%→0.57%) 등이었다. 반면 규제에서 비켜간 지역 아파트값은 급등했다. 부산진구는 지난주 0.89%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기장군(0.34%→0.80%) ▲강서구(0.52%→0.68%) 등도 상승폭을 키웠다.
강서구의 대표적인 신도시 ‘명지 오션시티’는 지난 2~3년 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지만 최근 한 달 새 급하게 오르고 있다. 명지 오션시티 초입 ‘명지 삼정그린코아’는 79㎡가 3억~3억3000만원에 거래됐으나 지난달 21일 3억9000만원(9층)에 손바뀜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서영환 부산남구 공인중개사협회 대의원은 “해·수·동에서 시작한 불길이 남구·연제구를 지나 (부산)진구, 동구, 남구, 사하구, 사상구, 강서구 등 지역을 가릴 것 없이 번지고 있어 지역 내에서도 원성이 높다”고 말했다.
■ 수도권 옥죄기에…부산으로 투자자 유입
그동안 부산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우선 최근 활발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거론된다. 강정규 동의대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는 “부산 주택시장의 경우 일부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에서 과열된 매수 심리가 해·수·동 신축과 구축 단지를 중심으로 다른 지역까지 번져나가면서 촉발된 현상”이라고 했다. 실제로 재건축 기대감이 작용해 지난 6월 대비 두 배 가까이 집값이 뛴 동래구 ‘럭키아파트’, 같은 기간 2억~3억원 씩 뛴 연제구 연산동 ‘연제 롯데캐슬 앤 데시앙’, ‘연산더샵’ 등은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새로 지었거나 개발 호재가 있는 단지들이다.
하지만 정부 규제를 피해 서울 등 외지인들이 돈 되는 물건을 선점하고 현지인들이 뒤늦게 폭등장에 뛰어드는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외지인들은 집값 급등이 시작된 올 6월에만 부산 전체 주택거래 1만1435건 중 19.4%(1859건)를 차지했다. 이는 올 1~5월 평균 외지인 매입 비율(15.42%)보다 4%포인트 높은 것이다. 지난해 부산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직후였던 12월(19.6%) 이후 가장 높다. 지난 7월에는 부산의 외지인 매입 주택 거래량이 2127건으로 1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부산 집값이 오르면 규제 지역으로 지정하고, 경기가 침체되면 해제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이 때마다 규제를 피한 곳 중심으로 어김없이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천경훈 킹스마겐 대표는 “10여 년 전부터 여윳돈 있는 투자자들은 서울이 묶이면 부산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특히 정부 규제가 풀리는 것을 투자 타이밍으로 본다”며 “최근에도 전문 투자자들은 부산진구나 강서구 등 규제를 피한 지역에 투자 상담을 의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주택 수요자들은 정부가 어설픈 규제로 이 같은 상황을 사실상 조장했다며 불만이다. 이영래 부동산서베이 대표는 “1주택자는 양도소득세 때문에 팔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보유세가 올라 불만이고, 신규 주택 수요자들은 집값 급등으로 내 집 마련 부담이 커졌다”며 “규제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정부의 착각이 문제”라고 했다. /부산=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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