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1.26 07:54 | 수정 : 2020.11.26 07:55
[땅집고] 지난 16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각종 입시 학원이 밀집한 학원가사거리로부터 서쪽으로 300m쯤 걸어가자 ‘귀인마을 현대홈타운’ 아파트가 보였다. 평촌동을 대표하는 이 아파트 80㎡(이하 전용면적)가 최근 하루 만에 3건이 팔렸다. 한 건은 9억3000만원에 거래해 해당 주택형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김학선 홈타운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매매된 3건 모두 최근 과천 지식정보타운에 청약했다가 탈락한 수요자들이 샀다”며 “정부가 신용대출도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매수세가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 안양 평촌신도시에 때아닌 주택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뛰고 있다. 평촌은 1980년대말 분당·일산 등과 함께 개발한 1기 신도시다. 11월 둘째 주 기준 평촌 신도시 아파트 매매가격 주간(週間) 상승률은 0.29%로 김포 한강신도시(0.39%)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번째로 높았다. 평촌신도시가 포함된 안양시도 경기·인천 지역에서 두 번째로 상승률(0.18%)이 높았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과 전세금이 모두 급등하고, 아파트 청약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다급해진 주택 수요자들이 평촌 아파트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 저렴하고 입지 좋은 평촌에 매수세 불붙어
평촌신도시는 지하철 4호선으로 서울 강남역까지 30분이면 이동할 수 있고 학원가도 발달해 학군 수요가 꾸준한 지역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엔 집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이른바 ‘버블 세븐’에 포함될 만큼 주거지역으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입주 25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가 많은 데다 교통이 더 편리한 판교·광교 등 2기 신도시에 새 아파트가 쏟아지면서 수요자들 눈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몰아닥친 집값 급등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수도권 주거지로 퍼져나가면서 이번에는 평촌까지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평촌에서도 대중 교통 이용이 편리하고 학군이 발달한 평촌·호계·비산동 일대 아파트값이 지난달 말부터 급격히 올랐다. 비산동 삼성래미안 아파트 84㎡는 지난 달 7억500만원(20층)에 거래돼 전달 대비 4000만원 올랐다. 호계동 평촌어바인퍼스트(내년 1월 입주 예정) 분양권 역시 이달 7억2000만원에 매매돼 전월 대비 3000만원 상승했다.
■ 새 아파트 청약 낙첨자들 “평촌에 집 산다”
최근에는 과천 지식정보타운 등 주변 아파트 청약에서 연달아 낙방한 30~40대 수요자들의 ‘실망 매수’가 두드러졌다고 한다. 평촌이 서울 출퇴근은 조금 불편해도 주거 환경이 좋고 자녀 교육 환경을 잘 갖춘 편이기 때문이다. 초원마을2단지 인근 한양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요즘 인기있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려면 가점 커트라인이 72점인데, 젊은 세대에게는 어림도 없지 않느냐”며 “6억 이하 아파트 구입할 때 보금자리론 받고, 신용대출 받고, 그야말로 ‘영끌’해야 집 한 채 마련하는 세대인데 갑자기 신용대출도 규제한다고 하자 대출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 집을 매입하러 온 것”이라고 했다.
서울 전세금이 올 9월 이후 급등한 것도 평천 아파트 매수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서울에서 전셋집을 빼고 일부 대출을 보태면 평촌에 아파트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2년 전 7억원에 전세 계약한 직장인 A씨는 최근 전세금이 11억원으로 급등한 탓에 도저히 일대 전세를 구할 수 없었다. A씨는 7억원에 일부 대출을 보태 직장이 멀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9억원대 평촌 귀인마을홈타운 아파트를 매입했다.
안양시 동안구 일대 전세금도 급등하면서 매매가와 전세금 차이인 ‘갭(gap)’이 줄어들자, 투자 차원에서 집을 매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귀인마을홈타운 아파트 80㎡ 매매가가 같은 기간 2000만~3000만원 올랐을 때 전세금은 1억원 넘게 오르면서 다시 갭투자 수요가 고개들고 있는 것. 홈타운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임대차3법 때문에 두어달간 갭투자자들이 관망세를 보이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 “이들은 세금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전세금이 밀어올린 집값…당분간 상승세 유지할 것
전문가들은 당분간 평촌신도시를 찾는 매수세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오른 전세금이 매매가를 들어올리는데다 집값이 저렴해 아직 더 오를 여지가 있는 것. 김학렬 스마트튜브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현재 주택 시장은 전세 매물이 가격을 주도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전세 수요가 얼마나 해소되는지에 따라 안양 집값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며 “전세금이 계속 올라가는 상황에서 매매 수요가 전세로 전환하는 추세라 당분간 안양시 집값도 우상향을 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안양이 광역철도망(지하철 1·4호선)을 갖추고 있는데 비해 집값이 저렴한 지역이라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