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1.21 04:32
[GO부자에게 물어봐] 도로 없는 맹지에도 집 지을 수 있다고?
[Question.]
지난해 정년 퇴직한 A씨. 서울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집을 지을 만한 토지를 물색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인이 좋은 땅을 발견했다며 A씨를 안내했다. 직접 현장에 가보니 지인 말대로 전원주택을 짓기에는 알맞은 규모였다. 땅 바로 옆에 도로가 나 있어 출입하기도 편리했다.
A씨는 이 토지를 매수할 생각으로 지적도를 열람했다. 그런데 지적도에는 현장에서 봤던 도로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알고보니 해당 도로는 지적도에는 없지만, 오랫동안 주민들이 통행로로 사용해온 ‘현황도로’, 즉 관습법상 도로였던 것. A씨가 “도로가 없는 맹지에는 집을 지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지인은 “현황도로가 토지와 딱 붙어있는 만큼 전원주택을 건축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인의 말은 사실일까.
[Answer.]
A씨가 소개받은 토지처럼, 모든 땅이 도로를 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이 소유한 땅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정부가 관리하는 ‘공로(公路)’와 이어지지 않는 땅이 수두룩하다. 이처럼 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토지를 ‘맹지(盲地)’라고 한다. 원칙대로라면 땅에 도로가 없는 경우 건물을 지을 수 없다. 현행 건축법은 대지의 2m 이상이 도로와 접해 있어야만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외도 있다. ▲건축물 출입에 지장이 없을 때 ▲건축물 주변에 광장·공원·유원지 등이 있을 때 ▲농막(농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집)을 건축하는 때라면 땅이 굳이 도로와 접해있지 않아도 된다.
건축법상 도로란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고, 너비가 4m 이상이어야 한다. 예외적으로 도로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규정도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형적인 제약 때문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설치하기 곤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해당 구간의 너비가 3m만 넘어도 도로로 인정해준다. 또 막다른 골목이면서 골목 길이가 10m 미만인 때는 도로 너비가 2m 이상이면 된다. 이 같은 예외 규정을 적용받으면 지적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황 도로라도 지자체장의 지정 및 공고를 거치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도로로 인정받을 수 있다.
현황 도로로 지정·공고 받으려면 해당 도로와 관련된 이해관계자, 즉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사용승낙을 받아야 한다. 이 때 ①이해관계자가 해외에 거주하는 등의 이유로 동의를 받기 힘든 때 ②지방자치단체 조례가 해당 도로를 주민이 오랫동안 통행로로 이용하고 있는 사실상의 통로로 정했을 때라면 토지 소유자의 동의가 필요 없다.
위 ②번 조항에서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지적도에 없는 현황도로를 도로로 지정하는 근거는 ‘통행지역권’이다. 통행지역권이란 타인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는 권리로, 해당 토지 소유자가 다른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를 지나지 않고는 공로에 접근할 수 없을 경우 인정한다. 그런데 주민들이 어떠한 도로를 오랫동안 이용해 왔다고 무조건 통행지역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도움을 받는 토지의 소유자가 타인의 토지 위에 도로를 설치해서 사용하는 객관적 상태가 계속된 경우에 한해서만 통행지역권이 인정된다. 여기서 ‘객관적 상태’란 도로 포장 여부를 뜻한다. 예를 들어 주민들이 이용하는 현황도로가 타인 소유의 땅에 나 있는 비포장 산길이라면 통행지역권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결론적으로 A씨 지인의 말대로 지적도에 도로가 표시돼 있지 않는 땅이라고 해서 건물 신축이 무조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매수하려는 토지에 붙어있는 길이 지적도에는 없는 현황도로일 경우,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받거나 통행지역권을 인정 받아 건물을 세우면 된다. /글=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 편집=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