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1.18 03:00
[땅집고] 올해 8월 완공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PH129(옛 더 펜트하우스 청담)’. 기존 엘루이호텔 부지를 부동산개발회사 빌폴라리스가 808억원에 매입, 지하 6층~지상 20층 규모로 지은 최고급 빌라다. 3년 전 분양 당시 분양가가 80억~170억원이었는데, 장동건·고소영 부부가 이 빌라 한 채를 계약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여동생 이덕희씨, 프로 골프선수 박인비씨 등도 한 채씩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다. 대지면적이 2588㎡(약 782평)로 널찍한데, 가구수는 달랑 29가구인 것. 전용면적 273.96㎡(82평) 27가구와 꼭대기층 펜트하우스 407.71㎡(123평) 2가구를 합해서다. 이 단지 인근 고급주택 ‘에테르노 청담’도 마찬가지다. 최상층 슈퍼펜트하우스 분양가가 300억원에 달한다. 지상 20층인데 총 29가구밖에 안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어반메시 남산’, 용산구 서빙고동 ‘아페르한강’, 성남 분당구 구미동 ‘한샘 바흐하우스’ 등 고급주택은 예외없이 29가구다.
왜 최고급 주택 단지는 29가구로 짓는걸까. 답은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현행 법상 일반분양 물량이 30가구 미만인 소규모 단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분양보증을 받거나 구청의 분양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분양가 상한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가구수가 30가구 미만이면 시행사가 분양가를 원하는 만큼 비싸게 책정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단지들은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일반 주택과 달리 공개 청약 의무도 없다. 집을 살 때 청약 통장이 필요 없고, 기존 주택 보유 여부도 따지지 않는다. 대부분 청약통장이 없거나 다주택자들인 연예인·기업인·유명인 등을 대상으로 분양하기에 적합한 것이다.
고급 주택을 30가구 이상으로 짓는 경우 분양 계획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 한남’. 당초 이 단지는 역대 최고분양가인 3.3㎡(1평)당 6360만원에 분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구수가 341가구에 달해 HUG의 분양가 승인 대상이 됐다. HUG는 시행사에게 “너무 고분양가여서 주변 집값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분양 승인을 거부, 분양가를 4000만원대로 낮출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분양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시행사는 일반분양하는 대신 ‘임대 후 분양’ 카드를 택했다. 일단 임대로 공급하고 4년 뒤 주변 시세에 맞춰 분양하는 방식이다. 당시 임대료는 평당 4500만원(가구당 33억~48억원) 정도였다. 그러다 정부가 7·10 대책에서 민간임대주택특별법을 개정해 단기임대(4년)를 폐지하면서 오는 2021년 3월 조기분양에 나서게 됐다. 분양가는 ▲206㎡ 42억~45억원 ▲244㎡ 49억~53억원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